의도하지 않는 신혼여행
의도하지 않는 신혼여행
코로나19 역병이 온 천지를 휘집고 다닌 지도 벌써 3개월이 되어 갔다. 많은 사람이 전염되었고 이승으로 떠났다는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뉴스가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공포에 짓눌러지기 시작했다. 사람끼리 내쉬는 숨을 통해 전파되다 보니 모임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생활은 제한되었다. 어쩔 수 없는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사회에서 거리 두기가 이루어졌다.
계절은 봄인데도 봄이 와 있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작년에 정해진 작은 아들의 결혼식 행사는 우여곡절 속에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결혼식을 알리는 쪽의 조심스러움만큼이나 소식을 듣는 쪽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피를 나눈 일가친척도 참석을 꺼리는 상황에서 누군들 참여하고 싶겠는가. 나이 많은 형제들한테 오지 말라고 하니 덩달아 젊은 조카들까지도 당연히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줄 여겼다.
조촐한 결혼식이 열렸다.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는 축하객을 보니 마치 조난되었다가 구조대를 만난 듯했다. 저 마스크를 쓴 모습 뒤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숨어 있을 것이다. 다들 드러내지 않는 걱정을 숨긴 채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결혼식 풍경이 벌어졌다. 단지 마스크를 벗지 않는 모습만 다를 뿐이었다. 조용한 결혼식이었다. 식이 끝날 즈음 신랑·신부가 우인들과 사진을 찍는 순서에 뜻밖에도 젊은이들이 우루루 쏟아져나와 잠깐이나마 분위기가 지펴졌다.
자연스레 폐백은 생략되었기에 결혼식은 끝이 났다.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잡았던 신랑·신부의 신혼여행은 이미 취소되었다. 바로 일상생활로 들어갔다. 일주일의 뜸을 들인 후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진주에 있는 할아버지·할머니 산소에 다녀오자고 하였다. 가는 길에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산소도 있으니 자연히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할아버지·할머니는 절에 모시고 있기에 먼저 부처님 앞에 삼배를 드리고 나서 영탑에 가서 인사를 드렸다. 아내가 ‘아버님·어머님 사랑했던 손자가 아내와 함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하고 고했다. 탑돌이를 마치고 두 분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기도에 아들 부부의 행복을 담았다.
진주하면 촉석루, 진주냉면, 진양호의 이름이 먼저 생각난다. 가벼운 요기라도 할 겸 냉면으로 유명한 하연옥에 갔다. 비빔냉면과 물냉면 그리고 육전을 주문했다. 진주에서 음식을 처음 먹어본다는 둘째 며느리는 진주냉면의 이야기에 살포시 즐거워했다. 거기에 육전까지 더하니 다들 배는 빵빵해졌다. 늘어난 배를 달래기 위해 촉석루로 갔다.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은 남강과 어우러져 우리나라 시내에 있는 성 중에서 가장 멋스럽다. 촉석루는 남강을 품에 안을 수 있기에 무수한 문인들의 글이 있고, 임진왜란 영욕의 역사가 묻어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진주성은 임진왜란과 때려고 해야 땔 수가 없다.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 대첩이 있었지만 제2차 전투에서는 처절한 패배를 당했다. 그 피의 아픔을 딛고 논개라는 여인이 남강에 한 떨기 붉은 꽃으로 떨어졌다. 그 강물은 돌고 돌아 우리네 가슴속으로 들어와 역사의 꽃을 피워내고 있다.
아들 내외는 성곽 아래로 나가 논개가 뛰어내렸다는 의암바위에 올라 역사의 아픔을 뒤로한 채 사랑의 포즈를 취한다. 바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겠지만 그저 세월의 무심함만 탓할 뿐이다.
영남 제일의 누각인 촉석루에 오른다. 앞에는 사방이 탁 트일 정도로 나지막한 산세가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넓은 남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시인 묵객이라면 시 한 줄은 절로 나올 만하다. 단지 6.25전쟁 때 불타버린 것을 1960년도에 복구하면서 옛날의 고즈넉한 맛은 좀 빛바래진 것 같다. 신랑·신부는 바로 옆에 있는 논개를 기리는 수지문(水指門)으로 들어갔다. 임을 향한 일편단심을 담은 강물을 가리키는 문이라는 뜻이겠지만 이제는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가리킴이 되었다.
강변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성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천천히 파릇파릇 연초록빛을 피우고 있는 나무에서 품어내는 봄기운을 느끼면서 걸어갔다. 서장대를 지나 북장대를 가는 중인데 북장대에 거의 이르렀을 무렵 서산으로 해가 막 넘어갈 참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우리는 노을을 쳐다보았다. 성과 나무를 벗 삼아 아름답게 지는 낙조의 풍경이었다. 여명을 끼고 처음 왔던 곳으로 여유로운 걸음으로 내려갔다. 아들 내외도 오늘처럼 편안히 인생길을 걷고 서산으로 아름답게 지는 해처럼 되기를.
진주성을 나오니 어둑어둑해졌다. 진양호를 보기 위해 남강댐으로 갔다. 남강댐홍보관 앞에 있는 전망대에 섰다. 길게 뻗은 남강댐 아래로 진주시가 화려한 불빛을 뽐내고 있고 호수 건너편에는 야리야리한 진양호 유원지의 불빛이 밤의 운치를 더한다.
진주를 떠나 대전으로 올라가면서 아들 내외에게 여행의 맛이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얼굴에서 편안한 미소가 흐르면서 신혼여행 같은 느낌이라고 하였다.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금산을 지나 인삼랜드휴게소를 불과 3km를 남겨둔 시점에서 갑자기 계기판에 엔진점검 신호가 켜졌다. 그러고 보니 차도 약간 이상한 듯했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금산 휴게소에 들어서니 차가 웅웅 떨리는 듯했다. 시동을 끄고 본네트를 열어봐도 별 이상이 없었다. 다시 시동을 걸어보니 아예 시동이 걸리지 않는데 타는 냄새가 났다. 수리를 받아오던 서비스센타 지인에게 연락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보험사에 연락해 견인차를 불렀다. 나는 견인차를 타고 나머지 식구는 택시를 불러서 따로 대전으로 출발했다.
며칠 후 수리회사에 갔더니 타이밍밸트를 보여주는데 고무줄처럼 가느다란 상태로 끊어져 있었다. 밸트 부속품인 베어링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그동안 이상 신호를 느끼지 못했느냐고 한심한 듯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조상님의 은덕이 크다고 말했다. 고속도로에서 끊어졌으면 엔진이 깨지고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대형사고가 일어날 뻔한 일이었다. 그냥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천운이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30년의 무사고 운전기록이 끝날뻔한 일을 겪었다. 큰 액땜을 한 것 같다. 아들 내외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