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인연
도솔산, 이름의 의미가 왠지 평범하지 않다. 지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 이름이 아니다. 불교의 도솔천兜率天에서 이름이 유래되어서 그런지 산에 언제 올라가도 기운이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산이 높아도 이름에 신령스러움이 깃들지 않으면 명산의 위용이 부족한 듯 싶다. 도솔산은 낮아도 이름으로 봉황이 깃들만한 넉넉한 품새를 품고 있다. 또한 소리에서 소나무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인 솔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듯이 소나무가 참 많은 산이다. 봄바람이 마음을 이끄는 날, 도솔산에 오르면 소나무가 내품는 기운으로 마음이 절로 편안하여 그냥 산의 품 안에서 한없이 머물고 싶다.
정착할 곳을 찾아 부유하는 나를 도솔산이 불러들여 이 산언저리로 이사를 온 지도 이십여 년이 넘었다. 그동안 거의 주말마다 한 번 내지 두 번은 넉넉한 기운을 느끼러 산에 올라갔다. 어느해 부터인가 내려오는 길에 유달리 내 눈에 쏙 들어와 산을 내려가도 마음에 머물러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렇게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부근의 소나무 중에서는 유독 돋보였다. 산길을 오고 가면서 이 나무와 스치듯 눈으로 가끔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솔산에 한 등산객의 실수로 산불이 제법 크게 났었다. 산불은 거의 이 나무 부근에서 가까스로 진화되었다. 주변의 소나무들은 대개 새까맣게 그을려졌고 결국 회복되지 못한 나무들은 몇 년 내에 차례로 베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늘 이 소나무가 대견하면서 애처로웠다. 오고 가면서 앞으로 잘 자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로하듯이 소나무를 어루만져주곤 했었다.
어느 날이었다. 문득 이 소나무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불현듯 나무에 이름을 지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나무에게 인사를 건넨 후 한 번 안아주고 살짝 등을 기댔다. “나무야 너도 이름을 가지면 좋겠지. 너는 어떤 이름이 좋니.” 한참동안 서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무의 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때 한 줄기 바람이 소나무를 스쳐 지나갔다. 나무도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나와 인연을 맺는 게 싫지 않은지 가지를 흔드는 듯했다.
소나무의 작은 흔들림이 내 마음을 흔들자, 영겁을 뛰어넘어온 화살처럼 나의 뇌리에 이름이 꽂혔다. ‘오랫동안 잘 살아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만송.
주말에 도솔산에 올라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 초입부터 벌써 만송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당연히 하산 길에 마주하게 되는데 우린 둘만의 특별한 인사를 나눈다. “만송아 잘 지내냐” 하면서 살며시 다가가 만송을 안아주고 등을 기댄다. 만송의 기분과 속삭임을 호흡으로 느껴보기도 한다. 나의 지친 마음과 몸을 만송에 의탁하고 있으면 세파에 좁아지고 어두워진 나의 감정이 정화되는 듯하다. 서로 그렇게 만송의 무심과 나의 유심을 주고받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아저씨 뭐 하세요”라고 눈치 없는 질문을 한다. 나는 그저 빙그레 웃거나 침묵한다. 어쩌다가 도솔산에 못 가는 날이면 만송의 모습이 마음속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만송아 잘 지내고 있니’ 하면서 독백의 인사를 바람에 실어 전한다.
한 주 동안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지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만송이 더욱더 나를 어루만져 준다는 기분이 든다. 그 순간은 참 따뜻하고 포근해지는 느낌이 뭉글뭉글 등을 타고 전달되어 온다. 말없는 나무한테도 이름을 지어주니 사람에게 느끼는 친밀한 감정이 오고감을 느낀다. 만송과 나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어서 현생에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혹시 서로 담 너머로 짝사랑하는 연인이었기에 이렇게나마 실컷 볼 수 있도록 맺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껏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도솔산과 만송의 존재로 더 그리 된 듯싶다.
만송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자주 보든 보지 아니하든, 다가오는 자의 마음 씀씀이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서 언제나 나를 반겨준다. 조그마한 집착도 없이 속마음을 들어주고 품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나 혼자서 할 말을 마치고 떠나가도 늘 그대로 있다. 그냥 인연은 오면 오고, 가면 가는 줄 알게 해 준다. 그러고 보니 꼭 해탈한 도인을 닮았다. 나도 만송한테서 물이 들었는지 가서 보면 즐겁고 간혹 보지 않더라도 서운하지는 않다. 보고 싶어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 단지 도솔산에 오르면 먼저 생각난다. 만송과 나는 그러면서 인연에 집착하지 않는 공기 같고 물 같은 친구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린 사람과의 중층적 관계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이런 사람관계의 얽힘 속에 자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나를 중심으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사람과의 만남은 저마다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위장한 채 서로의 심리적 거리를 재면서 늘 긴장하게 된다. 나는 만송과의 만남을 통해 대상을 분별하지 않는 덕을 느끼면서 인연의 머무름과 떠남의 이치를 조금씩 깨달아 간다.
지친 마음의 치유, 더 나아가 행복의 감각을 회복해야 하는 시대다. 나는 늘 그 자리에서 감정의 거친 물결을 묵묵히 받아주는 만송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아무런 부담 없이 떠나가도 되기에 마음에 머무름이 없는 그 마음을 배운다. 일주일에 한 번 도솔산에 올라가서 만송의 모습만 보고와도 사람 사이에서 묵혀 놓았거나 한 주 동안 새로 생긴 마음의 때가 씻겨나가는 기분이 든다. 만송과 작별하고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새처럼 자유롭다.
세상은 늘 잘못된 만남으로 시끄럽다. 처음에 좋았던 인연이 점점 욕심 때문에 꼬이고 뒤틀리면 끝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괴물과도 같은 존재로 변해 버린다. 그러고 보면 만송은 나에게 인연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주는 어둠 속의 달빛과 같은 존재이다.
만송아 잘 지내고 오래 오래 살아라.
어디선가 한 줄기 산바람이 불어와 내 가슴에 살포시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