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는 즐거움
노자를 읽는 즐거움
<老子>라는 이름부터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를 세우는 젊은 시절(而立)에는 어디 출장을 가면 가방 속에 늘 <길과 얻음>이라는 책이 있었다. 무엇을 얻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책을 꽤 소중히 읽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노자철학 이것이다>도 나름 공들여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눈이 침침해서 활자가 작은 이 책을 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간혹 몇 번 펼쳐 보았지만, 이 책과의 인연이 멀어졌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에 와서 보니 제목 자체가 너무 도전적이라 ‘노자’스럽지 않는 듯하다. 덕德을 ‘얻다’는 득得으로 풀이한 이는 주자朱子다. 무엇을 얻었길래 얻음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도올의 노자는 너무 밝아서 마치 노자는 ‘이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답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노자는 단정적인 언사를 쓰지 않는다. 그가 도를 표현함에 즐겨 쓰는 말은 ‘어둑어둑하다’, ‘텅 비었다’, ‘잘 알 수 없다’, ‘~인 듯하다’와 같은 종류의 말이다.
사실 <노자 도덕경>은 인간사회와 하늘의 도를 아우르는 큰 강령을 제시한 것이고 도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자물쇠를 풀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자물쇠라고 주장하는 무수한 노자의 주석서는 허공에 피어 있는 꽃과 같았다. 모두 저마다 자기의 관점에서 본 것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예수가 태어나기 약 5~6백년 전 사람인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면서 <노자 도덕경>을 쓰지 않았다면 중국의 사상적 풍토는 지금처럼 비옥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중국 역사를 보더라도 혼란한 시기에는 노자 계통의 인물이 나와서 수습하면, 다음에는 유학자들이 세워진 나라의 틀을 다듬어 갔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노자 도덕경>이 없었다면 중국에서 불교가 수용되는데 엄청난 애로를 겪었을 것이고 유학의 발전도 평범했을 것이다. 불교의 <금강경>은 변하지 않는 나無我와 고정된 상이 없음無相을 드러낸 책인데, <노자>의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라는 개념이 전승되지 않았다면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워졌을지 모른다. 노자 시대만 하더라도 심성心性같은 개념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오로지 도와 덕으로 그의 사유체계를 세웠지 않았을까.
노자는 세 가지 보물을 이야기했다. ‘자애로움慈’, ‘검소함儉’, ‘겸손함不敢爲天下先’이다. 이 세 가지 보물은 사회 지도층이 가져야 할 보배이자 자기를 단속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종교인들은 이 기준으로 스스로 돌이켜봐야 한다. 자기가 이룬 것에 의지하거나 이룬 것을 자랑하는 또 다른 형태의 권력자로 변해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오래전 일이다. ‘인도어’에서 골프를 연습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남자와 비서처럼 보이는 젊은 총각이 골프백을 메고 들어왔다. 젊은이는 골프백을 열어서 클럽을 준비하고 골프공을 2박스 받아온 다음 손수건을 가져와 그 남자에게 주었다. 손수건으로 손을 닦은 그 사람은 사방을 두리번 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인사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바로 옆 타석에서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표정에서 저 사람은 누군데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일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습이 끝나니 젊은이는 클럽을 깨끗이 닦은 다음 골프백에 넣고 다시 손수건을 갖다 바쳤다. 골프백을 멘 비서를 거느리고 그 남자는 유유히 걸어 나갔다. 그때 그 사람이 강연하면서 강조한 말은 ‘서번트 리더쉽’이었다.
<노자 도덕경>이 가진 큰 장점은 일상생활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데서부터 시작해 도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할 일 없는 나이가 되니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갈 때의 심정이 어렴풋하나마 느껴진다. 그동안 기억 속에 묵혀두었던 노자와 다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과도 같은 필연이 아닐까. 노자를 읽다 보면 짧은 한 구절이 거울과도 같아 살아오면서 놓쳤던 부분을 비추어 나를 돌이켜준다.
세상의 흐름과 초연하는 듯이 하지만 인생의 위로가 되어주는 노자, 오랜 세월 역사의 새로운 숨결마다 노자와 마음으로 벗한 이를 알아가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