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논어연해

안연이 공자의 수제자인 이유

비들목 2021. 1. 10. 22:31

1. 顔淵 問仁 子曰 克己復禮 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1.1 顔淵 問仁 子曰 克己復禮 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안연이 인에 대해 물었다. 공자왈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해서 예로 돌아감이 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을 인정하니 인은 자기로 말미암는 것이지 남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겠는가.

 

仁者 本心之全德. 克 勝也 己 謂身之私欲也. 復 反也 禮者 天理之節文也. 爲仁者 所以全其心之德也. 蓋心之全德 莫非天理 而亦不能不壞於人欲. 故 爲仁者 必有以勝私欲而復於禮 則事皆天理 而本心之德 復全於我矣. 歸 猶與也. 又言 一日克己復禮 則天下之人 皆與其仁 極言其效之甚速而至大也. 又言 爲仁由己而非他人所能預 又見其機之在我而無難也. 日日克之 不以爲難 則私欲淨盡 天理流行 而仁不可勝用矣

o 程子曰 非禮處 便是私意 旣是私意 如何得仁. 須是克盡己私 皆歸於禮 方始是仁

o 又曰 克己復禮 則事事皆仁. 故 曰天下歸仁

o 謝氏曰 克己 須從性偏難克處克將去

 

이란 본심의 온전한 덕이다. ’이기다이고 는 몸의 사욕을 말한다. ’돌아오다이고 예는 천리의 예절에 관한 규정이다. 을 행하는 것은 마음의 덕을 온전히 하는 까닭이 된다. 마음의 온전한 덕은 천리가 아님이 없고 또한 인욕에 허물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을 행함에 반드시 사욕을 이겨서 예로 돌아가면 일마다 모두 천리이고 본심의 덕은 나에게 온전히 돌아오게 된다. ’인정하다와 같다. 또 말하기를 하루하루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인을 허여하니 그 효과가 심히 빠르고 지극히 큼을 말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인은 자기를 말미암는 것이지, 타인이 허여할수 있는 바가 아니며 또한 그 기틀이 나에게 있으니 어렵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날마다 사욕을 이김을 어렵지 않게 여긴다면 사욕이 깨끗해지면서 없어지고 천리가 유행하여 인을 다 쓸 수가 없을 것이다.

o. 정자가 말했다. 에 머물지 아니하면 곧 사사로운 뜻이 되니 이미 사사로운 뜻이라면 인을 얻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모름지기 자기의 사욕을 다 없애면 모두 예로 돌아가고 비로소 인이 된다.

o. 또 말하기를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겨 예로 돌아가면 일마다 모두 인이다. 그러므로 천하가 인에 귀의한다고 하는 것이다.

o. 사씨가 말했다. 자기를 이김은 모름지기 자기 성품이 편벽하여 극복하기 어려운 곳부터 이겨서 나아가야 한다.

 

1.2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안연이 청하여 그 세목을 여쭈었다. 자왈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가 아니면 듣지를 말고, 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영민하지 못하여도 그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目 條件也. 顔淵 聞夫子之言 則於天理人欲之際 已判然矣. 故 不復有所疑問 而直請其條目也. 非禮者 己之私也. 勿者 禁止之辭 是 人心之所以爲主而勝私復禮之機也. 私勝則動容周旋 無不中禮 而日用之間 莫非天理之流行矣. 事 如事事之事. 請事斯語 顔淵 默識其理 又自知其力 有以勝之故 直以爲己任而不疑也

o 程子曰 顔淵 問克己復禮之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四者 身之用也. 由乎中而應乎外 制於外 所以養其中也. 顔淵 事斯語 所以進於聖人 後之學聖人者 宜服膺而勿失也. 因箴以自警

· 其視箴曰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

· 其聽箴曰 人有秉彝 本乎天性 知誘物化 遂亡其正. 卓彼先覺 知止有定 閑邪存誠 非禮勿聽.

· 其言箴曰 人心之動 因言以宣 發禁躁妄 內斯靜專. 矧是樞機 興戎出好 吉凶榮辱 惟其所召. 傷易則誕 傷煩則支 己肆物忤 出悖來違. 非法不道 欽哉訓辭.

· 其動箴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志士勵行 守之於爲. 順理則裕 從欲惟危 造次克念 戰兢自持. 習與性成 聖賢同歸

o 愚安 此章問答 乃傳授心法切要之言 非至明 不能察其幾 非至健 不能致其決. 故 惟顔子得聞之 而凡學者 亦不可以不勉也. 程子之箴 發明親切 學者尤宜深玩

 

은 조목이다. 안연은 부자의 말을 듣고서 천리와 인욕의 사이를 이미 구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시 의문이 드는 바가 없어서 바로 그 조목을 청했다. 가 아님은 자기의 사사로움이다. ’은 금지하는 말이니, 이것은 인심이 주인이 되는 까닭으로 사사로움을 이겨 예의 기틀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사로움을 이기면 일상생활에서 예에 합당하지 않음이 없고 일상생활에서 천리의 유행이 아님이 없게 된다. ’일을 일삼다이다. 청컨대 이 말을 따르겠다는 것은 안연이 그 이치를 속으로 깊이 이해하고 또한 스스로 자기의 힘이 이길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기에 곧바로 그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겨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o. 정자가 말했다. 안연은 극기복례의 세목을 물었는데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네 가지는 모두 몸의 쓰임이다. 안을 말미암아 밖에 응하여 밖을 다스림은 그 마음을 기르기 때문이다. 안연은 이 말을 섬겨서 성인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뒤에 성인을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이것을 잘 지켜서 한시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잠언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다.

· 그 시잠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본래 허하니 사물에 응해도 자취가 없고 그것을 잡는 데는 요점이 필요하니, 보는 것이 그 법칙이 된다. 물욕처럼 가리는 것이 앞에서 교차하면 그 마음이 옮겨가게 되니 밖에서 제재하여 그 안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극기복례를 함이 오래되면 성실해진다.

· 그 청잠에서 말하였다. 사람에게 지켜야 할 떳떳한 도가 있음은 천성에 근본을 둔 것이었으나 지각이 외물을 탐하여 사물과 동화하면 마침내 그 바름을 잃게 된다. 탁월한 저 선각자는 그침을 알고 정함을 두니 사악함을 막고 성을 보존하므로 예가 아니면 듣지를 않았다.

· 그 언잠에서 말하였다. 마음이 움직이면 말로 인하여 펼쳐지니 말을 함에 조급하고 망령됨을 금지하여야 마음이 바로 조용하고 한결같게 된다. 하물며 이것은 중요한 곳이니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좋아함을 나타내기도 하니 길흉과 영욕이 오직 그 말에서 초래되는 바이다. 말을 쉽게 하는 데서 잘못되면 허황되고, 말을 번다하게 하는 데서 잘못되면 지루해지니, 자기가 방자하게 말하면 남도 거슬리게 말하게 되고 나가는 말이 어긋나면 거슬려서 돌아오게 된다. 이치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것이니, 훈계하는 말을 공경하여야 한다.

· 그 동잠에서 말하였다. 철인은 기미를 알아서 성실하게 사려하고 지사는 행실에 힘써 행하는 데서 지킨다. 이치에 순하면 여유롭고 욕심을 따르면 위태하니 잠깐이라도 생각을 다스려서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지켜야 한다. 습관이 성품과 함께 이루어지면 성현과 같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o. 주자가 말했다. 이 장의 묻고 답함은 곧 심법을 전수해 준 절실하고 요긴한 말이니 지극히 밝지 않으면 그 기미를 살필 수 없고 지극히 강건하지 않으면 그 결단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오직 안자 홀로 들을 수 있었으니 무릇 배우는 자들은 또한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정자의 잠언은 드러냄이 친절하니 배우는 자들은 더욱 마땅히 깊이 완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