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새로이 맞이하는 주말부부

비들목 2020. 3. 6. 17:11

새로이 맞이하는 주말부부

커피가 감미롭지 아니하다. 따뜻한 커피향이 주는 분위기가 좋아서거나, 시간의 여백을 느끼기 위해서 마시는 커피가 아니다.

 

일요일, 터미널에서 의정부로 가는 아내를 배웅한 후 곧장 아파트에 들어갈 때, 빈 집에서 풍기는 쓸쓸함과 맞닥뜨리기 싫어 커피숍에 들른다. 커피의 향과 맛으로 가슴에 남아있는 허전함을 달래면서 노트북을 펼친다. 커피숍에 머무는 시간은 버스가 잘 도착했다는 카톡을 받을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머무는 마음에는 고독이 진하게 배이고 있었다.

 

주말부부는 그리 낯설지 않는 단어였다. 회사의 업무특성상 전국적으로 사업장이 산재해 있어 현장근무를 할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온 가족이 함께 내려갔지만, 어느 시기가 되니 교육문제로 어쩔 수 없이 혼자 가게 되었다. 그 때는 내가 가는 사람의 입장이었고, 샐러리맨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감 때문인지 마음에 스며드는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단지 정년을 몇 년 남겨놓지 않았을 무렵에는 외로움이 가끔 찾아왔다. 특히 겨울이 되면 더 그랬다. 월요일 저녁, 빈 아파트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냉기와 함께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공허함이 싫어 밖에서 배회하곤 했다. 그나마 월요일만 그런 느낌이 들었지, 주중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주말부부였다. 나는 집을 지키면서 회사 가고, 아내는 주말마다 손자를 보러 갔다가 온다. 자식 둘을 공부시키고 난 후, 어렵다는 청년취업 문제도 큰 문제없이 해결되었다. 큰아들이 결혼하고 나니 인생의 여유로움이 조금 우리 곁에 찾아왔다. 부부 모두 건강한데다가 미래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 약간의 경제적 여유도 생기는 듯 싶었다. 모처럼 돈이나 노후에 대한 걱정 없이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최고로 누릴 수 있는 마음편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들내외로부터 무한의 담보청구서가 제출되었다. 아직 감내해야 할 책임이 남아있다는 통지였다. 손자를 얻은 기쁨은 행복이었지만, 손자육아라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짐을 내려놓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누릴 수 있는 모든 호사를 옛날처럼 미래로 미룰 수밖에 없었고, 그냥 그 일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뿐이었다.

 

살아오면서 엄마는 자식들이 자립할 때까지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곱게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미래로 미루어 두었을 것이다. 중년이 될 무렵 자식들이 곁을 떠나면 엄마라는 짐을 벗어나 자기의 삶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이제 그런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을 텐데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아내는 힘들게 산모퉁이 돌아가니 또 다른 산모퉁이가 나타남을 느꼈을지 모른다. 자식이 장성하여 한 가정을 이루었는데도 여전히 챙겨주어야 할 자식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땅의 엄마들은 무덤에 갈 때까지 자식 뒷바라지하는 게 운명인 듯싶다.

 

손자육아는 한 번 시작하면 몇 년이라고 기약할 수도 없다. 한 녀석이 크면 또 다른 손자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실 손자의 재롱 뒤에는 자식들의 욕망이 숨어 있다. 오늘날 자식세대가 누리는 문화생활은 지금보다 그리 멀지 않는 우리 세대에서는 꿈도 꿔볼 수 없었다. 그땐 모든 가정생활의 방향은 돈을 모아서 집 사고 자식들 공부시키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낀 세대라, 부모생활비도 일정부분 감당해야 하는 짐도 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도 자식들을 힘들게 하거나 부담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린 시절 가난이 몸에 배여서 그런지 소비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다. 지금도 영화를 보는 행위, 콘서트 가는 일, 음악회 가기, 미술관람 등은 익숙하지 않는 일이라 생각만큼 잘 가지 못한다. 취미라고 해 봐야 별로 돈이 들지 않는 걷기나 독서다. 커피숍에서 즐기는 한 잔의 커피는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단지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은 일 년에 두어 번 가야하는 취미 아닌 호사로 되었다.

 

세상의 흐름이 바뀌었다. 젊은 부부가 홀로 돈을 벌어서 집 사고 가족이 소비하고픈 욕망에 부합한 문화생활을 꾸려나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힘들게 변해 버렸다. 게다가 여성들도 자기실현의 욕구를 추구하게 되면서, 전업주부로 머물러 있기에는 타인과의 비교대상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이나 좌절감을 이기기 힘들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다가도 애를 키우기 위하여 한 번 경력이 단절되면, 특별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재능이 없는 한 재취업이 쉽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가정을 꾸민 후 가장 크게 부딪히는 문제는 집을 마련하는 일이다. 집값이 봉급을 모아서 취득할 수 있는 수준보다 너무 비싸다보니, 자식 입장에서는 맞벌이로 돈을 벌고 싶은 게 당연하다. 자연히 부모에게 손자육아라는 짐이 맡겨지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손자육아에서 할아버지의 역할은 별 볼 일 없다. 할머니들의 손길만 더욱 분주해진다. 여자는 할머니, 어머니, 아내라는 일인 삼역의 고된 삶을 맞이해야 한다. 손자 깨우고 재우기, 아침밥 먹이고 어린이집 보내주고 데려오기, 저녁 먹이고 잠잘 때까지 할머니는 한시도 손자한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틈나는 시간에는 아들의 와이셔츠를 다리고, 반찬도 준비해야 한다. 다시 금요일 밤에는 집으로 와서 살림하고, 남편 일주일 치 반찬을 준비한 후 일요일 밤차로 올라간다. 간혹 손주가 감기에 걸리거나 아파서,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면 24시간 돌봐야 한다. 이럴 때 옛날 우리 엄마가 했던 말처럼 아내도 똑 같은 말로 푸념한다. ‘이게 다 내 팔자려니말이다. 아내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이럴 때면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손자육아, 중년의 부부라면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 보는 의무일 수 있지만 막상 우리 일이 되고 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다. 노후 계획에 대한 궤도수정은 물론 지금까지 쌓아온 인간관계도 일시적이나마 단절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일을 포기하거나 외면할 수도 없다. 손자의 재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의 선물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쉬이 맡길 수도 없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저출산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손자육아를 실제 경험해보니 애를 많이 낳자고 할 수 없다. 손자육아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담보하기에 저출산은 한 가정의 문제이면서 욕망을 위해 내달리는 사회전체의 문제이다.

 

아내가 카톡으로 올려주는 손자의 재롱을 보면 온갖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손자의 환한 모습은 한 떨기 꽃이다. 그 꽃은 할머니의 정성, 사랑, 염원이 거름되어 피어났을 것이다.

아내가 손자육아를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일상의 자리로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