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序卦1

서괘는 육십사괘의 생생하는 차례를 배열한 것이다. ·······의 팔괘는 만물의 생장성작용을 행하는 근본 요소이다. 만물의 운동하는 현상을 보건대, 모두 팔괘의 ·, ·의 상호접촉에 의하여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팔괘를 상하로 거듭하여 六劃六十四卦를 지은 것이다. 三劃卦는 사물의 조직의 상이고, 六劃卦는 사물의 하고 또 하는 상이다. 그러므로 육획괘를 상하의 로서 보면 의 두 획은 천의 상이 되고 의 두 획은 의 상이 되고 의 두 획은 의 상이 되니, 이는 사람이 천지의 사이에서 三才의 위를 이루고 있는 이다. 이 상에 의하여 역학에는 천도가 있고 지도가 있고 인도가 있는 것이다. 天道로 만물의 씨가 에서 생하여 에서 형질을 성하고 地道로 만물의 씨가 에서 싹이 생장하여 에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천지는 하나의 생명의 유기체이고 각 부분의 만물도 또한 각개 생명의 유기체로서 모두 자신 안에 자체의 생성법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 각개의 생명성에는 모두 동일한 기원과 공통한 법칙이 있어, 어느 한 부분에 변화가 발생하면 전유기체가 반드시 그것을 인연하여 연속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또 그 변화의 형태는 각기 자체의 생생법칙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십사괘의 괘의 순서는 이미 이 있다면 반드시 이 있고 이 있으면 또 반드시 ·이하의 六十二卦가 있는 것이니 이것이 緣緣生生이다. 역경의 序卦는 이 생명체의 연연생생의 이치로서 時運··하는 을 말하고 그것으로서 천지, 인사 및 만물의 운행변화하는 原因을 밝힌 것이다.

 

序卦易學의 주요한 조직이니 이것을 사람의 몸으로서 보면 인체의 , , , , , , , 百體는 신체를 구성하는 原材이고 이 原材가 각각 그 에 맞게 배열된 까닭에 사람에게 생명이 있고 성정이 생하는 것이다. 역학은 천지와 準似하여 하나의 생명체로 되어 그 속에 신명의 덕을 통하고 만물의 을 같게()하여 귀신을 행하고 있으니 이는 육십사괘라는 原材가 차례를 정하여 각각 그 위에 해당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학을 지은 성인이 그 괘의 차례가 錯亂될 것을 염려하여 특히 序卦傳 일편을 지어 한 생생체계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易卦二卦一宮으로 되어 모두 三十二宮이 되는데 각 變易卦反易卦로 되어 있는 것이다. 만물의 변화에는 變易, 反易, 交易三易의 상이 있고 易卦에도 三易이 있다. 變易이라 함은 사물의 발전과정에 그 작용이 對待物로 변하는 형태이니, 로 변하고 으로 변하면서 음양이 서로 바뀌며 사물을 생생하는 것 등이 곧 변역이다. 지금 어느 一物異質他物轉變하는 것을 화학적 변화라 하는데 이 또한 변역의 한 형태이다. 易卦으로 변하고 으로 변하여 乾坤同宮함과 같은 것이 變易卦이다. 反易이라 함은 사물의 현상 속에서 그 대대되는 사물이 발전하는 때에 반드시 그 본체되는 현상과 倒逆하여 反生하는 형태로 있으니 舊事物의 속에서 新事物이 생하는 때에는 그 新事物의 작용은 반드시 舊事物의 형태와 상반되는 것이다. 母體 중에서 태아가 모체와 逆生하여 있고 그믐달이 초생달로 倒生하는 것 등이 곧 반역이고, 지금의 생명체에서 생생작용의 변화가 일어나서 새로운 작용이 생함을 생리적 변화라 하는 것도 또한 반역의 한 형태이다. 易卦으로 하고 으로 반하여 ·同宮하는 것이 反易卦이다.

 

交易이라 함은 사물의 운동과정에 그 對待物換易하는 형태이니, 태양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어 상하의 가 정하여 있으되, 사물을 생생함에는 태양의 양기가 에 내려와 光熱로 되고 水氣가 올라가 雲雨로 되는 것 등이 곧 교역이다. 지금 사물의 본질은 변치 아니하고 오직 相與하는 형태만 변하는 것을 물리적 변화라 하는 것은 또한 교역의 한 형태이다. 易卦으로 변하고 로 변하여 需訟同宮하는 것이 交易卦이다. 만물의 생생은 주로 부모가 를 생하는 생리적변화인 반역의 에 의하여 世世繼生하고 에서 가 생하는 때에는 음양이 相易하는 화학적 변화인 變易에 의하여 비로소 유형이 생하게 된다. 오직 물리적 변화인 交易으로서는 물이 이어 생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序卦變易宮反易宮만으로서 괘의 순서를 정한 것이다. 序卦傳 중에 反易으로서 하는 괘는 五十六卦 二十八宮이오 變易으로서 하는 괘는 八卦 四宮이니, 이는 만물의 생생은 八分이 생리적변화인 反易의 형태로서 하여 繼世하고 八分이 화학적 변화인 變易의 형태로서 하여 繼世하는 것이다. 우주창생의 처음에는 무에서 유가 시생하는 때이므로 父傳子受하는 反易이 없고, 오직 無中生有하는 變易이 있으므로 序卦變易하는 天地卦乾坤으로서 으뜸괘로 삼고 乾坤卦이 되어 六十四卦를 통괄하고 또 문왕팔괘도와 서로 표리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육십사괘중에서 오직 乾坤 二卦를 높이 들어서 문왕팔괘도의 해설로 삼은 것이다. 생리적 변화의 繼世胎生이오 화학적 변화의 繼世化生의 상이니 우주는 創生의 처음에 無中生有하는 化生(乾坤의 예)이 있은 후에도 八分胎生하고 八分化生하는 것이다.

 

만물은 乾元·坤元二元작용에 의하여 생생하고 있으므로 序卦二元에 의하여 상하 二經으로 나눈다. 上經乾道하고 下經坤道하며 事物의 생생운동에는 ··의 상이 있고 ··의 작용은 生長收成의 형태로서 행하고 있으므로 역괘에도 生長卦收成卦가 있다. 生長卦上經乾道에 속하고 收成卦下經坤道에 속하는 것이다. 生長收成을 초목으로서 보면 초목이 아래에서 생하여 위로 상승하는 것은 생장하는 것이므로 생장하는 자는 하부가 먼저 생한 다음에 상부가 생하는 것이다. 초목의 수액이 상부로부터 아래로 하강하는 것은 收成하는 것이므로 收成하는 자는 상부가 먼저 수성한 다음에 하부가 수성하는 것이다. 이 이치에 의하여 ··이 있는 六字卦로서 下卦하고 上卦한 자는 로부터 하는 生長이 되고 이러한 괘는 ····噬嗑···大過····十二卦이며, 上卦하고 下卦한 자는 위로부터 내려가는 收成의 상이 되고 이러한 괘는 家人·····歸妹·····中孚·小過十二卦이다. 역경의 상경은 생장을 상하므로 생장괘는 상경에 있고 하경은 收成을 상하므로 收成卦는 하경에 있는데 오직 생장괘인 , , , 鼎 四卦가 하나의 무리가 되어 하경의 중앙에 있으니 이는 이 四卦가 모체중의 태궁으로 되어 수성작용을 행하는 모체 중에서 홀로 생장작용을 행하는 胎兒宮이 되는 까닭이다.

 

상경의 생장괘는 그 序卦의 순서가 모두 분산되고 있으되 하경의 收成卦家人···解 四卦가 한곳에 취합하고 ·歸妹·····中孚·小過의 여덟 괘가 , 를 중심으로 하여 또한 한 곳에 취합하고 있다. 이는 사물의 생장하는 때는 각기 분산하고 수성하는 때는 서로 어울려서 한곳에 취합하고 하는 이치에 의한 것이다.

 

상경과 하경의 괘는 또한 각각 ··의 상이 있으므로 스스로 ··의 수로서 구분되어 있으니, ··이라 함은 洛書 중단의 東三, 中宮五, 西七로서 은 사물의 처음 형체를 이루는 이고, 는 사물의 精氣를 이루는() 이고, 은 사물의 성숙하는 상이다. 洛書의 상단 ··乾道가 되고 下段 二··坤道가 되고 中段 三··人道가 되는데, 人道는 또한 만물의 위이므로 ··는 만물의 하고 하고 하고 함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生長成을 상한 序卦의 순서도 또한 ··로서 구분되는 것이다.

 

o. 序卦2

역의 서괘는 反易變易을 취한 것인데 同宮卦反易變易한 것은 ·····歸妹·旣濟·未濟의 여덟 괘이다. 서괘로서 보면 ·는 천지가 처음으로 서로 사귀는 괘로서 河圖宮의 중심이 되고, 그것이 反易·變易하여 천지가 개벽하면 이에 생의 시운으로부터 장의 시운으로 넘어가는 것이며, 時運時運의 일대 변화이다. 그러므로 그 첫 反易·變易을 겸한 生長卦·가 배당하는 것이다. ·의 속에도 互卦, ·歸妹가 있고 ·의 속에도 互卦·歸妹가 있으니 ·歸妹收斂卦이다. 이는 생장의 속에 스스로 결실하는 수렴이 있는 이치이며 序卦·歸妹時運으로부터 時運으로 넘어가는 일대변화기이므로 , 歸妹에 또한 反易·變易의 상이 있는 것이다. , 歸妹에서 수렴하기 시작하면 그 결실로서 互卦, 旣濟·未濟가 출생하니 旣濟·未濟는 천지가 交互하고 日月이 왕래하고 反易變易을 겸하고 한 천지 일월의 일대 변화이며 ·에서 천지가 일월로서 상교한 이후에 旣濟·未濟에서 第二世의 천지일월이 출생하는 것이다. 變易繼世하는 圜轉하여도 그 형이 변치 아니하므로 그 形狀이 둥글어 만물의 씨의 유행하는 상이 되는 것이다. 만물의 유동하는 자는 반드시 圓狀을 띠는 것인데, 만물의 씨는 世世繼承의 작용을 행하기 위하여 능동작용을 가지고 부단히 유행하는 가운데 동물의 , 초목의 子實 등의 圓狀을 띠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이는 신생명인 씨는 원상으로 된 연후에 능히 圜轉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까닭이다. 易卦 중에 繼世작용을 행하는 괘도 그것이 신생명인 씨로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므로 반드시 圓狀을 띠고 있는 變易繼世卦로 되는 것이다. 序卦首卦乾坤天地의 큰 씨로서 圓狀卦로 되고 上經陽體로부터 下經陰體로 넘어가는 씨인 , 大過가 또한 원상이 되고, , 大過를 운행하는 ·가 또한 원상의 ·로 된 것이며 하경에는 胎宮에서 태육된 后天의 씨가 후천으로 넘어가는 때에 또한 中孚·小過圓狀卦가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繼世하는 씨는 반드시 ·陽卦로 되고 씨의 형태는 원상을 띠고 있는데 그 원상은 문왕팔괘도의 ·에 나타나고 있어 에서 으로 圜行하여 원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천지의 큰 씨인 乾坤에서 ·으로부터 하여 원상이 되고 上經陽體로부터 下經陰體로 넘어가는 가 또한 으로부터 하고, 胎宮에서 생육되는 태아가 또한 ·으로서 序卦으로부터 하며, 后天으로 넘어가는 未濟는 수목에 부착되어 있는 六月의 과실로서 그 속에 鬼方하는 만 있고 艮果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니 이는 艮果未成少男으로서 后天에 넘어가서 여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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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易筆談卷一

海寧抗辛齋初稿

上古之易

上古之世.無所謂易也.但後世之易.實本於庖羲.故周官掌太卜者有三易之

.因周以易名.遂追謚連山歸藏皆謂之易.余所謂上古之易者.亦援斯義而

追稱之耳.溯自庖羲一畫開天.其時雖文字未興.而結繩爲治.已有等秩倫紀

之可觀.繫傳稱仰則觀象於天.俯則觀法於地.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

.遠取諸物.於是始作八卦.以通神明之德.以類萬物之情.其條理井然.而觀

法於地曁觀鳥獸之文與地之宜.已能將地之所有.分晳觀察.頗如近世科學

.區地文地質學爲二類.此豈歐洲入所謂上古時代野蠻酋長之可比儗哉.

以佃以漁.雖未脫游牧之風.而政治亦已斐然可觀矣.况八卦成列.有形.有象.

有聲.實已備具文字之作用.因而重之爲六十四卦.益之以變化.固已肆應而

無窮矣.此庖羲之易.所以爲我中國文化之初祖也.

庖羲氏歿.神農氏作.斲木爲耜.揉木爲耒.耒耨之利.以教天下.日中爲市.致天

下之民.聚天下之貨.交易而退.各得其所.是已由游木時代而進于農商且規

模宏遠.政教幷行.又嘗百草以禦疾疢.民又夭折.倉制顯庸.澤及萬世.然其時

文字未興.所賴以政治之具者.實維庖羲所遺傳之卦象.度神農氏必有所

增益而變通之.是名連山.相傳以重艮爲首.經卦皆八.重卦皆六十四者也.

神農爲炎帝.亦號列山氏

神農氏歿.黃帝堯舜氏作.通其變使民不倦.神而化之使民宜之.易窮則變.

則通.通則久.蓋至是文明日進.制器尚象.人事日繁.而舊有之八卦.不足以應

.於是廣卦象爲六書.而文字以生.益以天干地支.而陰陽五行之用愈精.

律定聲.民氣以和.而禮樂以興.本黃鐘以定度量權衡.治曆法明時.定璇璣玉衡

以齊七政.絕地天通.百官以治.萬民以察.而易之爲用.益又乎不備.故黃帝之

易曰歸藏.以坤乾爲首者也.堯舜繼黃帝之後.於變時雍.垂衣裳而天下平.

讀繫辭下傳二章.上古進化之歷史.與三易之源流.可概見矣.此上古之易

.

中古之易

夏易連山.蓋繼述神農氏者也.商易歸藏.蓋繼述黃帝氏者也.周曰周易.或曰

祖述堯舜.孔子曰易之興也.其於中古乎.作易者其有憂患乎.雖指周易.以文

王與紂之.事當之.然帝降而王.德不如古.神禹受命.開家天下之局.湯武革命.

易揖讓而征誅.均不能無慚德焉.故三代之易.皆可謂之中古.所謂於稽其類

其衰世之意邪.上視羲皇.已不無今昔之感矣.

三代之政綱本於易

制度文物.皆出於易.故曰觀其會通以行其典禮.易在三代.不啻爲政治之書.

夏宗連山.其禮樂政刑胥以連山爲則.殷宗歸藏.其禮樂政刑胥以歸藏爲則.

故紀歷有人統地統天統之殊.而尙忠尙質尙文.亦各有所傳重.蓋變通損益

以蔪合于時宜.而成一代之制.必統系分明.而後綱舉目張.有條不紊.今夏殷

之制不可悉睹.而周禮一書.雖經竄改.而周家之典章文物.猶可得其梗槪.足與周易相印證.自秦漢以降.目易爲卜筮之書.政失其綱也久矣.

 

學術之派別出於易

我國學術.約可分爲三派.曰儒.曰道.曰墨.其餘諸子百家.名類雖多.要無不可

以此三派歸納之.道家宗老氏.而實導源於黃帝.故相傳曰黃老.墨家出於禹.

而實濫觴於神農.孟子有爲神農之言者許行.主並耕之說.亦墨之別派也.

家集大成于孔子.論語曰文王旣沒文不在玆乎.則孔子固自承爲繼續文王

者也.故儒家之學出于周易.道家之學出于歸藏.墨家之學出于連山.各有所

.自漢而後.雖罷斥百家.獨崇儒道.而道與墨之學.亦實有不可磨滅之精神.

歷代之治.舍其名而用其實者.不可枚舉.至於今日.儒術亦掃地盡矣.而老氏

墨氏之學.則因與歐西之哲學.及其他科學之相契合者頗多.崇尙新學之士.

漸有取而研究之者.禮失求野.循末反本.則吾文明初祖之羲易.或尙有大明

之一日乎.

孔子之易

易者.明道之書也.五帝之治天下也以道.三王以德.五霸以功.世運自帝降而

.王降而霸.道之不明也久矣.孔子生當衰周.五覇之功已杳.浸浸乎由功而

降而尙力.至惟力是尚.弱肉強食.人道或幾乎悉矣.故孔子贊易以存道.又以

道之未不可驟幾焉.乃取中爻以明功.陳九卦以崇德.

見繫辭下

第七章

循序而進.由功而

.其庶幾乎與道近矣.

兩漢易學之淵源

孔子傳易於商瞿.商瞿字子木.其行事不見於論語.蓋孔子晩年之弟子也.

瞿授魯橋庇子庸.子庸授江東馯臂子弓.子弓授燕周醜子家.子家授東武孫

虞子乘.子乘授齊田何子莊.凡六傳而周滅於秦.秦焚書而易以卜筮獨免.

.田何以齊之公族徙杜陵.號杜田生.授東武王同子中.及雒陽周王孫.丁寬.

齊伏生.王同子中授淄川楊何.丁寬授同郡田碭王孫.王孫授沛施讎.蘭陵孟

.琅邪梁丘賀.是爲三家之易.皆立於學官置博士.

施讎授張禹.及琅邪魯伯.禹授淮陽彭宣.沛戴子崇平.魯伯授琅邪邴丹.伏曼

.

孟喜授同郡白光少子,沛瞿牧.及焦延壽.延壽授京房.

梁丘賀傳臨.臨授五鹿充宗.充宗授平陵士孫.張仲方.鄧彭祖子夏.齊衡咸

長賓.

東萊費直.治易長於卜筮.無章句.徒以彖象繫辭文言.解釋上下經.傳琅邪王

璜子中.同時沛高相治易.與費略同.亦無章句.說陰陽災異.自言出于丁將軍.

授子康.及蘭陵毋將永.高氏費氏之學.皆未立於學官

漢代易學.以施孟梁丘三家爲盛.京氏專言災異.高氏亦與京略同.到東漢傳

施學者.有劉昆.及子軼.傳孟學者有渥丹鮭.陽鴻任安,傳梁丘學者.有范升楊

.張興.及子鲂.皆不甚顯.至漢季獨費易盛行.若馬融.鄭玄.荀爽.陸績.劉表.

宋衷諸人.皆習費氏古文易.孟學獨一虞翻.施梁之學無聞矣.

晉唐間之易學

魏晉以後.王弼之易.盛行江左.弼爲劉表之甥.表固治費易者.弼之說易.不盡

宗費.屛棄象數.專以玄理演繹.自謂得意忘象.又分繫彖象諸傳於經文之下.

學者以其清雋新穎.且簡便而易學也.靡然宗之.由是施讐梁丘諸家之易盡

.費氏之古本.亦爲所淆亂.而盡失其本來面目矣.然弼年二十有四卽死.

辭說卦三篇.均不及注,後人以韓康伯注續之.永嘉之亂.中原板蕩.經籍散失.

李唐統一.掇拾燼餘.雖六經本文幸而未闕.而兩漢以來各家之師說傳註.

十亡其七八矣.孔穎達疏易.復崇王而黜鄭.太學肄業.一以王注爲本.古易遂

不可復見.賴李鼎祚集注.掇拾殘闕.搜集漢注至三十餘家.窺管一斑.全豹之

.似尚可約略而得.後之言漢學者.莫不循是蹊徑.以爲登峯造極之基.至滿

清中葉.

念孫

 

 

惠言

 

 

諸家.皆精研漢學.單辭隻義.不惜殫畢生之清中葉.

念孫

 

 

惠言

 

 

諸家.皆精研漢學.單辭隻義.不惜殫畢生之清中葉.

念孫

 

 

惠言

 

 

諸家.皆精研漢學.單辭隻義.不惜殫畢生之清中葉.

念孫

 

 

惠言

 

 

諸家.皆精研漢學.單辭隻義.不惜殫畢生之

宋人講易.自司馬溫公以至程子.大抵皆不出王弼範圍.周子通書發明太極

.爲理學之宗.與易學尚無甚關涉.自邵康節創爲先天之說.取說卦傳天地

定位一章.安排八卦.謂之先天卦.以帝出乎震之方位爲後天卦.又以乾一兌

二離三震四巽五坎六艮七坤八.爲先天八卦之數.更反劉牧九圖十書之說.

以五十五數者爲河圖.四十五數者爲洛書.爲八卦之所自出.於是太極兩儀.

四象八卦.而十六.而三十二.而六十四.立說與漢人完全不同.不啻在易學中

另闢一新世界.然當其時.並未盛行.如溫公程子,皆與邵爲老友.且推極重其

爲人.稱爲內聖外王孔孟沒後之一人.而未嘗取其說以講易.其反對如歐陽

文忠諸人.更無論矣.至朱子撰周易本義.取河圖洛書與先天大小方圓各圖.

弁諸卷首.又另著易學啟蒙以闡明之.而後邵子之先天學與易經相聯綴.

宋元明清.皆立諸學官.定爲不刊之程式.後之學者.幾疑此諸圖爲易經所固

有矣.雖漢學家抨擊非難.不遺餘力.而以其理數出自天然.推算又確有徵驗.

終非討生活于故紙堆舯者.空言所能排斥也.故宋之易學.能有所發揮.獨樹

一幟.與漢學相對峙者.自當首推邵氏.

朱子本義.頗能矯王弼以來空談玄理之弊.而注意於象數.故取用邵子之說

頗多.顧未能會通全易.博采兩漢諸家之說.以明聖人立象之意.又泥於門戶

之見.不敢暢所欲言.而以聖人以卜筮教人一言.爲立說之本義.此何異以璇

磯玉衡爲定南北方向之用.不亦隘乎.

兩宋易家之著錄者頗多.以當時鐫版業已發明.流傳較易.今四庫所存.及刊

入通志堂經解.與惜陰聚珍諸叢書者.尙有六十餘種.而納蘭氏又彙輯諸儒

語錄別集.曁佚書之單辭賸義.爲大易萃言八十卷.可謂極宋學之大觀已.

元明之易學

元明兩代之言易學者.無甚發明.著錄者大抵盤旋於程朱脚下爲多.元之熊

與可.胡一桂.熊良輔.王申之.董眞卿,明之黃道周.喬中和.皆其傑出者也.然皆

有所依傍.不能成一家之言.黃道周之易象正.三易洞璣.雖以天象曆數闡明

易理.而艱深奧衍.流傳不廣.惟來知德氏崛起川中.以二十九年之功.成來氏

集注一書.風行大江以南.三百年來未絕.雖其錯綜之說.頗貽人口實.然取象

說理.淺顯明白.惟恐人之不易索解.恒罕譬曲喩以明之.視故作艱深以文其

淺陋者.自勝一籌.初學者得此.尚爲善本也.

勝朝之易學

 

有清一代.經學之盛.遠過宋明.其治易學專家.如刁氏包

蒙吉

 

李氏光地.

厚菴

 

有清一代.經學之盛.遠過宋明.其治易學專家.如刁氏包

蒙吉

 

李氏光地.

厚菴

 

 

姚氏

配中

 

張氏.

乘槎

 

彭氏.

申甫

 

皆能獨抒已見.各有心得.而顧亭林.毛大可.

 

姚氏

配中

 

張氏.

乘槎

 

彭氏.

申甫

 

皆能獨抒已見.各有心得.而顧亭林.毛大可.

 

姚氏

配中

 

張氏.

乘槎

 

彭氏.

申甫

 

皆能獨抒已見.各有心得.而顧亭林.毛大可.

 

姚氏

配中

 

張氏.

乘槎

 

彭氏.

申甫

 

皆能獨抒已見.各有心得.而顧亭林.毛大可.

學而能闡發性理.與六十四卦之爻象變通化合.尤爲歷來講易家之所未有.

端木國瑚

鶴田

 

後起.更冶漢宋於一爐.一一以經傳互證.無一辭一字之虛設.

視焦紀二氏爲更上一層.允足以殿全軍而爲勝清一代易學之結束矣.

歷代易注之存廢

兩漢之易注.永嘉而後.已無完書.雖經歷朝好古之士.探討搜輯.然皆東鱗西

.除李氏集註外.其能集合成書者.不可概見.濟南馬氏.

竹吾

 

旁搜博采.更於

太平御覽永樂大典與說文爾雅文選水經諸注.傍及內經道藏之所稱引者.

悉爲編次.共得易部之逸書八十餘種.承學之士.亦可略得其梗概矣.魏晉以

.其完全無缺者.推王弼注爲最古.今與孔穎達之正義.陸德明之音訓並傳.

與程傳朱義.皆歷代官書所刊布.士林所奉爲金科玉律者也.其餘唐宋諸家

之易注.世罕單行.賴津逮汲古曠照漢魏諸叢書刊布.而以後之聚刻叢書者.

必以易爲甲部之冠.孤本祕錄之籍此僅存者.爲不少矣.納蘭氏之通志堂經

.輯刊易注至四十餘種.尤爲各叢書之所未有.而勝朝經解正續兩編.選錄

當時之易注.亦皆卓然可傳之書也.綜計清四庫全書.易部所藏.都一百五十

二種.其存自著錄而無書者.約三倍其所藏之數.辛齋自學易以後.歷年購求.

所得已有四百六十三種.計四庫所藏之一百五十二種購求未得者.尚有二

十九種.四庫存目所錄已購得者.有七十八種.四庫編錄於道家及術數類者.

如皇極洞淋三易洞璣等計三十餘種.餘皆爲叢書及家刻單行之本.而寫本

及辛齋所手抄者亦六十餘種.爲日本人所著述者三種.嗣在廣東上海蘇杭

揚州.陸續又得一百五十餘種.前後都六百數十種.以視歷代經籍志.及陳東

塾朱竹垞所著錄者.曾不逮十之三四.然以現世所有者而論.則所遺已無幾

.

日本之易學

日本文學.皆我國所津逮.故我國已佚之書.而日本尚保存者甚夥.黎氏古逸

 

叢書所刊.未能盡焉.光緖甲午以後.我國新進.厭棄古學.而竺舊之士.又墨守

糟粕.不能發揮精義.與新理相調和.而資利用.致精義入神之學.日就澌滅.

季以國立大學.求一完全經師而不可得.致羲經竟任缺席.鼎革以後.竟公然

廢棄經學.而隸於文科之下.亦可謂臻晦盲否塞之極運矣.而日本旣饜飫於

物質文明之利.更反而求諸精神.雖舉國喧囂於功利競爭之途.而學術之研

.尚不忘初祖.仍有多數之學子.從事於易經.東京有易學會.有易學演講所.

有易學講義之月刊.其占筮亦尚用古法.我國二千年來失傳之揲蓍法.經學

鉅子所未能決其用者.彼中隨處可購得揲蓍之器也.惟蓍不産於日本.則以

竹代之.禮失求野.不僅維繫易學之一助也.辛齋曾購其易學講義.其取象悉

宗漢學.大抵取資於李氏集解者爲多.有所謂影象意象者.則爲彼所擴而充

 

之者也.有易學新講義.爲我國北宋人的著述.四庫有其書.外間已乏刊本.

爲日本所印行.而近出之高島易斷.於明治維新以後五十年間.內政外交諸

大事均有占驗論斷.亦可覘彼國之所尙矣.

美國圖書館所藏之易

美國國會圖書館.以四十萬金鎊.專爲購買中國書籍之用.除前清殿板各書.

爲清政府所餽送外.其餘所采購之漢文書籍.亦有數千種之多.皆爲日本人

所販運.直接購自中國者無幾也.友人江亢虎君.現爲其漢文部之管理員.

已夏間回國.邂逅於滬上.云彼中所藏易部.亦幾有四百種.因囑其將目錄鈔

.以較辛齋所藏者未知如何.然彼以異國之圖書館.而其所藏.視本國四庫

所有.至兩倍有半.殊足令人生無窮之感也.

 

漢宋學派之異同

自來言易者.不出乎漢宋二派.各有專長.亦皆有所蔽.漢學重名物.重訓詁.

字一義.辨晳異同.不憚參伍攷訂.以求其本之所自.意之所當.且尊家法.恪守

師承.各守範圍.不敢移易尺寸.嚴正精確.良足爲說經之模範.然其蔽在墨守

故訓.取糟粕而遺其精華.且易之爲書.廣大悉備.網羅百家.猶恐未盡.乃株守

一先生說.沾沾自喜.隘陋之誚.云胡可免.宋學正心誠意.重知行之合一.嚴理

欲之大防.踐履篤實.操行不苟.所謂和順於道德而理於義.窮理盡性以至於

命者.亦未始非羲經形而上學之極功.但承王弼掃象之遺風.祇就經傳之原

.以己意爲揣測.其不可通者.不憚變更句讀.移易經文.斷言爲錯簡脫誤.

則非漢學家所敢出者也.元明以來.兩派對峙.門戶攻擊之陋習.雖賢者亦或

不免.甚者以意氣相爭尚.視同異爲是非.不但漢學與宋學相爭訟也.同漢學

.尊鄭者則黜虞.是孟者則非荀.同宋學焉.而有洛蜀之辨駁.朱陸之異同.

下者更或依鉅儒之末光.蒙道學之假面.爲弋名干祿之具者.尤不足道矣

坊本易經之謬

國學淪亡.書局盡廢.承學之士.求一善本之經書.已不可得.近日坊間石印之

易經.其謬誤尤甚.校對之疏略.姑置不論.序文則程傳也.目錄之標題則本義

.目錄之卷帔則程傳也.首列河圖洛書.及先後天八卦六十四卦各圖.亦本

義也.而上下經與繫傳之篇第.則又皆程傳也.其注則又皆本義也.可謂極參

伍錯綜而莫明其妙者矣.觀其封面所署.則又曰監本易經.推求其故.則謬誤

相仍.已非一日.蓋明刻永樂之監本.固程子之傳與朱子本義並列者.而篇第

章句.悉依程傳.而以本義之注.錄於程傳之後.清刻易經傳義音訓亦猶是也.

後以考試功令.專重朱義.坊賈射利.爲節減篇幅計.以去傳留義.而篇帙則仍

未之改.前明嘉靖間蘇州學官成某.復卽是本而刊布之.成此非驢非馬之怪

.公然流布.讀者旣不求甚解.而所謂敎育部敎育廳敎育會者.皆熟視無睹.

不加糾正.嗚呼.易世而後.將不知經書之爲何物矣.

講易家之錮蔽

歷來講易家.無論其爲漢學.爲宋學.而有一宗牢不可破之錮蔽.卽將經學二

字橫梗於胸中是也.埋其龐然自大之身於故紙堆中.而目高於頂.不但對於

世界之新知識.新思想.深閉錮拒.而於固有之名物象數氣運推步之原本於

易者.亦皆視爲小道.而不屑措意.凡經傳所未明言.注疏所未闡發者.皆目爲

 

妄談.爲異端.排斥攻擊.不遺餘力.而不知易之爲書.廣大悉備.上自天地之運

.下及百姓所日用.無不彌綸範圍於其中.孔子贊易已明白言之.曰書不盡

.言不盡意.故聖人立象以盡意.變而通之以盡利.鼓之舞之以盡神.是書之

所未言者.固當求之於意.意有所未得者.當求之於象.象有所未盡者.當變通

之以盡其利.而易之道始應用而不窮.今乃盡反孔子之言.曰吾言義不言利.

曰得意而忘象.得象而忘言.目光之盤旋.不出於書外一寸.此易道之所以終

古長夜也夫.

今後世界之易

易窮則變.變則通.通則久.黃帝堯舜.通其變使民不倦.神而化之.使民宜之.

民之情.恆厭故而喜新.厭則倦.倦則精神懈弛.而百事皆墮壞於無形.此蠱之

 

象也.故君子以振民育德而變化之.蠱成隨.則元亨而天下治.隨元亨利貞而

天下隨時.隨時之義大矣哉.今之時何時乎.五洲交通.天空往來.百卝並興.

寶盡發.所謂萬物皆相見.其重明繼照之時歟.離火之功用.徧於坤輿.極則爲

.或致突如其來如焚如死如棄如之占.果能神而化之.變通盡利.則將由物

質之文明.而進於精神之文明.是明出地上.火地爲晉.受茲介福

晉六二

 

之時

.易道於此.必有大明之一日.吾輩丁茲世運絕續之交.守先待後.責無旁貸.

亟宜革故鼎新.除門戶之積習.破迂拘之謬見.以世界之眼光觀其象.以科學

之條理玩其辭.集思廣益.彰往察來.庶五千年神祕之鑰.可得而開.興神物以

前民用.必非尼夫欺人之語也.

新名詞足與經義相發明

物生而後有象.象而後有滋.滋而後有數.民物之孳乳無窮.而象數之遞演而

遞進.遞進而遞繁.無有止境.故在黃帝之時演易.伏羲之八卦已不足用.乃益

之以干支.文王演易.干支已不足用.乃益之以彖爻.孔子贊易.則彖爻又不足

以盡世變物情.乃益之以繫辭十翼.今距孔子之世又三千年矣.世界大通.

物之紛紜繁變.什伯倍蓰千萬於古昔.而所用之文字.乃不能隨世事遞演遞

進以應所需.且小學中絶.音移義晦.經典固有之字.因廢置已久.不復爲人所

識者.十殆四五.故說易者.往往於易之一字一義.累千萬言之解釋.而仍不能

.然必待小學旣明而說易.又如臨渴掘井.不能濟目前之用.且不能令多數

之學子盡通小學焉.則雖說亦如無說.而易仍不能明.則不如假世界通用之

名詞以代之.以補文字之闕憾.而閱者亦易於了解也.豈非易之一助乎.如易

言坤其靜也翕.其動也闢.而翕與闢之義.以舊文字釋之.則翕爲聚也合也.

爲開也.一開一合.字義雖盡.而於易言闢翕之妙用.仍未著也.若假新名詞以

解之.則闢者卽物理學之所謂離心力也.翕者卽物理學所謂向心力也.凡物

之運動能循其常軌而不息者.皆賴此離心向心二力之作用.地球之繞日.

此作用之公例也.以釋闢翕.則深切著明.而閱者亦可不待煩言而解矣.不僅

名詞已也.新思想與新學說.足與吾易相發明者甚多.而經學家見之.必又曰

穿鑿附會.誣蔑聖經.則吾其奈之何哉.

俗義詁經之流弊

今日所用之字.猶數千年之字也.然形式雖未改.而精神則非復數千年之

.音如義.類皆變易.任擧一字而衡論之.若此者蓋比比焉.其僅音變而義未

變者.如下無等字.於詁經尙無出入.其訓義變易者.雖古音尙存.於經義已不

可通矣.如君臣二字.古訓但爲主從之別.降及漢魏.猶爲普通尊人卑己之謙

.未嘗專屬諸朝廷也.自宋以後.則專以君爲尊無二上之天子.臣爲庶司百

職之官僚.而君字遂神聖不可侵犯矣.官字之古訓.亦僅爲專任職司之名.

未含有尊崇高貴之意.人之耳目口鼻舌曰五官.言其各專所用.不能彼此互

代也.故手足則曰肢而不稱官.其義甚明.自漢後天子曰縣官.曰官家.而官之

義遂混.後世官之權位浸大浸崇.而官字漸成尊崇高貴之稱.今之俗尙.凡物

美者.輙加一官字以爲標幟.其去官字之本義.不可以道里計矣.於是龍飛九

.遂爲帝王之祥.惟辟作威.亦附卦爻之義.兢兢乎僭越之虞.凜凜乎生殺之

.如周易折中者.易竟爲專制帝王之護符矣.非以今義釋經階之厲哉.

大寶曰位

下繫一章.天地之大德曰生.聖人之大寶曰位.何以守位曰人.何以聚人曰財.

理財正辭.禁民爲非曰義.意義本相聯貫.而文字亦緊相銜接.乃中間揷一位

.便爲上下辭意之梗.宋儒遂改何以守位曰人之人字爲仁.以迴護位字.

與下聚人一句又不相貫.于是呂氏本又改從古本作人.而曲爲之說.亦終不

可通.其實誤不在人字而在位字.人字不當改人字.而位字當改作仁字.蓋仁

字與位字形式相近.以致傳訛.古訓相傳.所寶惟仁.未有以位爲寶者也.况以

位爲天下之公器耶.則不必寶.以位爲一人之私有耶.則能不寶.晉文之答秦

使曰.亡人無以爲寶.仁親以爲寶.詎作易之聖人.見出重耳下哉.

按此說初創同人善其新潁聳....

 

元字之精義

彖傳曰.大哉乾元乃統天.此元字.卽元亨利貞之元.舊注元始也.本義元大也.

何休公羊注曰變一而爲元.元者氣也.无形以起有形.以分造起天地.天地之

始也.邵子亦曰元者氣之始.合觀諸家之說.于元字之精義.尚有未盡.辛齋以

爲舉元亨利貞並言之.爲乾之四德.而元之一字.不但可包舉利亨貞三字.

可舉全易而一氣貫注.故曰大哉乾元乃統天.超乎無始.以立乎天地之先者

.文言乾元者始而亨者也.此元字乃天之元焉.坤彖至哉坤元.乃地之元也.

文言元者善之長也.則人之元也.善之長.卽仁義禮智之仁.仁從二從人.元亦

從二從人.故仁爲人之元.所謂天經地義.簡言之卽天良也.蓋物各有元.大而

天地.小而飛潛動植各物.均莫不具有此元.得之則生.不得則死.顧元之爲元.

無聲無臭.無形質可見.而其功用所著.亦幾非言語筆墨所能摩寫而形容之.

然元不可見.而仁可見.仁不可見.而仁之寓于事物者可見.古人造字.其精義

往往互相鈎貫.而卽物定名.亦無不各寓其意.如果實核中之質體.名之曰仁.

已可見矣.而元亦卽可因仁而顯其用.如果核桃曰桃仁.杏曰杏仁.而桃與杏

之元.卽在此仁之中果核之所以能滋生者.實賴有此仁.賴有此仁中之元.

于西人之紀載得一說.足爲斯義之確證.西人於埃及地中.掘得四千年之古

.屍腹中往往實以林禽及小麥等物.以保藏之非常完密.故均歷久久而不

.取林禽及麥而播種之.仍能發榮滋長.與新者無異.此無他.以其元之尚存

在也.若其元已失散無存.則雖當年之果核.種之亦不能發生.因此可證明物

各有元之理.而人元所存.則惟此天良.天良不滅.生機亦不滅.天良澌滅.則亦

無元之果核.已無萌生之望.雖倖而生.亦行尸走肉而已.剝之上九.碩果不食.

卽此僅存之天良也歟.

嫌於无陽

坤上六文言.陰疑于陽必戰.爲其嫌於无陽也.故稱龍焉.注疏與各家講解.

未能明悉.鄭注嫌讀如群公慊之慊.或作溓.溓雜也.以嫌作雜字解.雜於无陽.

語亦費解.九家作兼.謂陰陽合居.故曰兼陽.則无字又爲贅文.王弼云爲其嫌

于非陽而戰.正義謂陰盛似陽爲嫌.純陰非陽.故稱龍以明之.說各不同.其未

能暢發經旨則一也.辛齋按陽本無盡.坤之上六爲純陰之候.近乎有无陽之

.今可擧例以明之.五月初五日.相傳爲端五節.又日端陽節.九月初九日.

重陽日.而十月曰小陽月.夫五月.于卦之消息爲姤.一陰始生.端者始也.當日

端陰.何以稱之曰端陽.九月.於卦爲剝.碩果僅存.陽已將盡.乃何以稱之曰重

.十月於卦爲坤.爻辰正値坤之上六.純陰無陽.何以曰小陽.此正扶陽抑陰

之意.爲其嫌於无陽也.故稱端陽重陽小陽焉.則坤上之嫌於无陽.其義可比

例而得.不待煩言而解矣.

陰陽

易數.以陽統陰也.易象.以陽變陰者也.易義.扶陽抑陰者也.故陽大陰小.

貴陰賤.凡對待之字.幾無不以此爲例.顧何以立天之道.不曰陽與陰.而曰陰

與陽.又曰一陰一陽之爲道.又曰分陰分陽.輒以陰居先而陽居後.必曰陰陽.

無言陽陰者.其義何居.曰此卽天地之大義.而易道之妙用也.天尊地卑.易之

序也.乃乾天顛下首而周乎地之下.坤地有常而高舉于天之上.於是地天泰.

四時成.天德不爲首.而地道代終.一陰一陽.往來升降.至三陰三陽水火旣濟.

六爻皆當位.乾坤定位.反之爲一陽一陰.至三陽三陰.乃火水未濟.六爻皆不

當位.離坎不續終.而爲男之窮矣.

陽卦多陰陰卦多陽

繫傳曰.陽卦多陰.陰卦多陽.其故何也.陽卦奇.陰卦偶.其德行何也.陽一君而

二民.君子之道也.陰二君而一民.小人之道也.此章闡明易道陰陽之大義.

全易之關鍵.辨卦爻陰陽之德行.數理之體用.乃學者入手之綱領.故設爲問

答以明之.陽卦者.震坎艮.皆一陽而二陰.陰卦者.巽離兌.皆一陰而二陽.乾坤

爲各卦之原.且純體不易.其陰陽易之.故不在此設問之列.歷來注易家.于一

君二民二君一民之義.異說分歧.莫可折衷.皆因泥於一二之數聯屬君民.

無論如何曲折遷就.終不可通.孫氏取鄭康成氏禮記王制法云.一君二民.

皇帝堯舜.地方千里.爲方千里者百.中國之民居七千里.計七七四十九方千

.四裔之民.居五十一方千里.是中國四裔.二民共事一君.二君一民.謂三代

之末.以地方五千里.一君有五千里之五.五五二十五.更足以一君.二十五始

滿千里之方五十.乃當堯舜一民之地.故曰二君一民.可謂極迂迴曲折之致.

而不敢謂其確合經義.至朱子語類.謂二君一民.試問一個民而有兩個君.

是甚麽樣.則尤爲滑稽矣.宋人講解大意與朱子略同.其實孔子語意.甚爲明

.一君二民.謂君得其一民得其二也.二君一民.謂君得其二民得其一也.

二兩字.不過表示多寡之意.故下文曰君子之道.小人之道.經義顯豁呈露.

待曲解.何以時歷三千年.經無數之經師大儒而迄未講明.是可怪也.

(廿四) 見伏動變

見伏動變.謂之四通.見者.卽本卦所獨動之一爻也.

如地雷復則復

之初九卽爲見

見之下.爲伏

如復內爲震

震下卽伏巽

見顯而伏隱.所謂由其可見.推其所不可見.故有見卽有伏.

見者動.動必有所之.之者往也.動之始也.有所之而之其所.則見者伏而伏者

.所以爲變也.於八卦之象.兌見巽伏.震起艮止.而八卦之循環變化.悉在其

.故卽以此而推之於爻.則亦不外此四者.而爻之性情才用.亦胥可見矣.

見知現在.伏知將來.覆以窮其相反之情.變動中爻以盡其曲折之妙.故動而

之於伏曰動.通變而存其位曰變.通一爻而有四卦之通.是以能該隱顯.極常

.以周知天下之務.

見伏動變.循環迭更.如坤初爲見.則乾初爲伏.而姤復包其中.如復初爲見.

姤初爲伏.而乾坤又包其中.至其性情之同.則伏與動變.均與可見之爻互相

發明.陰陽動靜.流行不息.無往而不還隱而不見之理.故伏卦者.卽見卦之所

託以變動者也.動在內卦.則陰下而陽上.動在外卦.則陰上而陽下.是陰陽所

生之陰陽.所以有少陰少陽之別.變在內外卦者反是.見伏爲交.則動爲之

摩盪矣.

一爻而具四爻之通.如乾二獨動.則坤二變矣.

乾利見大人坤直方大

師二爲動.則同人

之二爲變矣.故設卦觀象.不可泥於一卦一爻.古人一家之學.雖未必能通貫

全經.而一無障礙,如孟氏之旁通.京氏之飛變.虞氏之之正.邵氏之加倍四分.

均各有獨到之處.但證之於經傳而合者.固皆有可取.而足與經義相發明.

博反約.愼擇精審.是在學者之神而明之.非言之所能盡者矣.

八字命爻

胡氏煦周易函書.原文多至一百餘卷.後雖節錄爲約注約存別集.尙有三十

餘卷.亦易說之大觀矣.其全書綱要.以繫傳開而當名辨物一語僞主.謂伏羲

先天圖.以黑白二色分別陰陽.皆連貫若環.至文王始開而爲八卦.開而爲六

十四卦.以爲發千古未有之秘.其實周子太極圖.陰陽相互.分爲三層.胡氏所

繪之先天小圓大圓圖.卽由周子太極圖衍而成之.又折之爲八卦六十四卦.

謂爲文王所開.其牽强固不待智者而知.卽基本書中亦往往不能自圓其說.

蓋八卦不但有其象.尙有其數.若以黑白二色分別陰陽之爻.將一九四六之

.亦以黑白二色代之乎.其誣不待辨而明矣.然其於易理.致力頗深.融合漢

.時有心得.瑕不掩瑜.三書之可取者甚多.其八字命爻之說.尤爲詳人所略.

語極精到.大有畀於初學.特約其大意如左.

聖人命爻之義.有十二樣筆法.陰陽各六.九六分稱是也.然其因卦論爻.因爻

論卦.而三百八十四爻之義.已各迥別.顧此十二樣筆法.要其寓意止有八

.初上九六二三四五是也.

何以初命爲初.上命爲上也.曰聖人立卦.止於三爻.不以兩畫.不以四畫.其妙

正在於此.何也.以天下之物.各有其位.位之所乘.各有其時.時與位合.而參差

不齊之數出焉.聖人設卦立象.凡以考時之所値.位之所乘而已.然時有三候.

位有三等.故立卦亦止於三爻.何云時有三候.曰此概辭也.今但取一時.銖銖

寸寸而較之.雖累百千萬.不足盡此一時之數矣.譬自盤古開天以及堯舜.

中歷年原不可攷.今以三候約之.曰此古之初.此古之中.此古之末.則無不可

以意會者.

近世科學家硏究歷史地

質等學者亦槪用此法

又一歲十二月.今亦以三候約之.爲歲之

.歲之中.歲之末.亦無不可以意會者.下至時日亦然.是流行之機.或遠或近.

或舒或促.皆無有踰此三候者也.何云位有三等.曰此亦概辭也.今但取一物

銖銖寸寸以數之.累千百萬.不足盡此一物之位矣.譬若立五尺之竿於此.

三等約之.上者上.中者中.下者下.盡之矣.又立千尺百尺之竿於此.亦以三等

約之.上者上.中者中.下者下.盡之矣.是形器之屬.或高或卑或廣或狹.均無有

踰此三等者也.況上古民淳事簡.以三候約時.以三等約位.得其大概.已可共

.後世知識日開.人事日繁.一歲之候.分而爲月.又分而爲日.又分而爲時刻

分秒.細分之至於毫厘絲忽之不可盡.其於位之大小長短.亦復如是.皆其細

 

已甚者也.至約以三等三候.曾有出聖人之範圍者乎.凡有位者必有時.於是

乎有上之時.中之時.下之時.凡有時者必有位.於是乎有初之位.中之位.末之

.聖人欲以卦象盡天下之物.則不得不體物象所自具之時位而命之爻.

以三爻之設.決不可以增減也.然就三爻而立之名.則取時必遺位.取位必遺

.聖人知陰陽必偶.而物生必先氣而後形.於是乎立爲重卦.以時而命內卦

之初.明乎氣之肇端.於此始也.以位而命外卦之上.明乎形之成質.於此定也.

周公釋爻.每兼時位.職是故也.時陰而位陽.時虛而位實.時由乾出.位由坤始

.

流行不息者時.乾道之動用也.故不可定之以位.鎭靜而有常者位.坤德之靜

體也.故不可定之以時.卦爻剛柔.悉出乾坤.無一卦一爻無剛柔.則無一卦一

無爻動靜.則無一卦一爻不具此時位者矣.然時出於乾.而陰爻亦得言之.

出於坤.而陽爻亦得言之者.此又乾坤相須之大用.不可偏廢者也.

言初而不言中末.言上而不言下中何也.曰易爲上古之書.文字初起.不能不

簡而賅.使人便於傳習.而深致其思.後世文字旣繁.遂連篇累牘而不止.反不

若古人之簡而能核其要也.如屯卦繼乾坤而居序卦之首.曰剛柔始交.剛柔

.乾坤也.交者剛柔之互也.始者賅六十二卦之辭.聖人知六爻各一其時位.

而又不能合一時位.乃賅以一字.卽以初字著其時之理於下.而以上字著其

位之理於上.各從其所重而定之云爾.乾以始之.故擧其端而言初.坤以終之.

故竟其委而言上.又使知卦旣有初.則其爲中爲末舉可類推.旣有上.則其爲

中爲下舉可意想也.又使知上與初對.則上字原可以賅末.初與上對.則初字

原可以賅下.皆簡而能賅.引端而無待竟委者也.周易卦爻.文字所不能賅者.

而象無不可以賅之.象固不可限量也.

內卦爲來.外卦爲往.初則來之始.上則往之極也.用一初字.是欲人溯源於太

.用一上字.是欲人知極則必反也.有往則必有反.有來則必有初.如人從何

處來.則必有最初發足之地.非僅向發足時考之也.是要窮到地頭.知其來自

何處耳.緣爻象從來之處.非可易察.故孔子曰其初難知.若其旣有所往.自無

往而不反之理.今以一字說到極處.而必反之理卽在其中.由其上之己無可

.則往到極處.己顯而易明.故孔子曰其上易知也.

今以上之一字例諸初.則初當日下.以二三四五之序次例諸初.則初當曰一.

乃不曰下不曰一而特命爲初.此正聖人寓義之最精處.因易之卦爻.原本先

.在陰陽未判之先.渾然一太極耳.逮一畫開天.自无出有.乾元一亨.萬物之

.悉資於此.但形質未成之先.止有氣耳.氣機初爻.實託始於乾元.毓靈於太

.方斯時也.旣無實質可指以定其位.非考之以時.曷由辨乎.顧時有三候而

初則氣機之方萌.方從太極天心流衍而出.故特用一初字.以發明卦爻所從

出源頭.而來字之義.亦卽寓於初字之中.彖以內卦稱來.卽從初字出也.凡物

旣有初.則此後豈有窮盡.故不言中末.是初之重於中末也.位旣定於上.則下

焉皆其所統.故不言下中.是上重於下中也.八卦本於太極.而太極無象可求.

故以兩儀初成之爻命之曰初.爲其有形可睹自此一爻而始.故二三四五皆

紀之以數.乃初之一爻.非數所能始.以有太極在其前也.巽以伏卦而取震象

一陽未生之始.亦曰无初.是正有无分界之始.亦卽此初字之義也.緣其分位.

本屬兩儀.又不得上侵太極之一.論其成質.實居有形之最先.又不得連太極

而序之.以下侵中爻之二.故以初命爻.使人探本窮源.由其能來之故.而追索

於所以有初者.果何在耳.

以初爻之義例諸上.則上當曰末.以二三四五之序例諸上.則上當曰六.今不

曰未不曰六而特命爲上者.言乎其爻極於此止於此也.蓋立卦定於三爻.

卦止於六畫.伏羲畫卦至六爻.己成六十四象.足以備天下萬事萬物之理.

爻之外.無以復加.聖人卽寄無以復加之義.於最後所成之一爻.而命之爲上.

言此外己無可上也.二三四五紀之以數.而上獨非數者.以數之所衍.原無終

窮之時.卽上之一位.亦非數之所能極也.然以九二六二之類此之.而初之九

.何獨在下.蓋因乾元之亨.先氣後形.而氣之將至.則無形可執.今觀揲蓍求

卦之時.分二掛一.揲四歸奇.明知此爻之形體.必將有成.則是此爻己有其初

.然氣至而形未著.則陰陽之體猶未可定.故不能定之以位.而但可考之以

.而稱之爲初.必待三變旣足.察其數之多少.有陰陽老少之可辨.乃始有九

六之可稱矣.譬若妊娠將娩.當胞胎乍轉.業己知其生之初矣.然分別男女.

待旣生以後.審其形體而後能定.是時之可徵者在先.而形之可觀者在後.

九六在初字之下也.

二三四五別之以數.不與初上同類何也.曰聖人立卦之法.取象於天地之化

.上爻覆之於上.天也.初爻承之於下.地也.其中所有.則資始資生之化.所稱

爲萬物者也.萬物成形之後.其類實繁.非紀以數.曷由辨之.曰初上何獨不記

之以數也.曰初在理氣相接之始.非數之所能始也.上爻極盡而反.貞下又復

起元.豈有終窮之數.故亦不以數紀也.

初上二爻.九六在下.二三四五.九六在上.何也.曰卦之初爻旣成.陰陽兩象.

有定體.然後審定陰陽所至之分數.如陰陽到二分.便以爲九六之二.到三分.

便以爲九六之三.若嬰孩旣生.業己男女可辨.然後可以數紀其長幼之次序.

故二三四五在九六之下也.

卦至上爻.九六又復在下何也.曰上爲窮極將返之時.其上更無可加.是上之

一位.卽此卦之大終大止.其位得而主之.陰陽至此.皆不能以自主.泰之復隍.

否之傾否.剝之剝廬.皆謂其極則必反.故九六字在下也.

旣以初爲來處.則來之義祇可言於初.旣以上爲往時.則時之義祇可言於上.

乃內三爻均言來.外三爻均往.何也.曰聖人以三畫成卦.則此三爻雖陰陽

上下不同.莫不同具此一卦之性情.又不可執定實有此等三畫之象.確然植

立於此而不可易也.只是聖人假此著數.以探討太極陰陽將形末形之氣機.

不能無太少動靜之別.而因畫出奇偶以擬議陰陽相變之分數.其內外上下

多寡純雜有如是耳.氣機無截然可分之候.故三畫只宜作一卦看.氣機亦非

形體之可似.故亦不必以連斷之形體拘也.重卦雖分內外.不過體用兩端而

.今旣同爲內卦.則皆可自初而言來.同爲外卦.則皆可因上而言往矣.

初爻考之以時.然欲追尋來處.則又宜在位上考究.上爻定之以位.然欲人知

爲窮極將反.則又宜在時上着意.卽此時位兩字.所謂有位中之時.有時中之

.參伍錯綜.維精維妙維肖.神而明之.更非言語可盡矣.

讀易之次序

或問讀易之方法如何.曰必先讀經.或曰經文奧衍.初學者不能驟解.必先得

明白解釋之注本.而後經始可讀.現所通行之讀本.大都爲朱子本義.而本義

之解釋旣略.且多以不解解之.往往曰其象如此其占如此.而究其何以如此.

仍不得而知.初學讀之.不但茫無頭緖.且如其解以解經文.亦味同嚼蠟.雖極

好學者.讀不終卷.己昏倦欲睡.則經又烏能讀乎.曰不讀經而看注無益也.

熟讀經而看注.亦仍無益也.讀經之方法.宜先讀最後之說卦傳.次讀上下繫

.然後讀上下經.則於卦位爻位象義及彖象爻之材德.己略有頭緒.以讀經

.自可領會.必逐卦讀之極熟.認之極清.任舉一爻.而各爻之文相類而相似

.俱可列數.任舉一卦.而反正上下變互諸卦.俱可意會.更有未喻者.然後求

之諸家之註釋.方能擇善而從.確獲其益也.曰諸家之註釋.浩如煙海.宜先閱

何種爲最善.曰易有四道.辭變象占.尚辭者莫備於程傳.深有得於潔淨精微

之旨.然其所短者.往往離象數以言理.而有時不免於鑿空.是宜參以 紀愼齋는 사람이름

之易問及觀易外編.

紀氏名大奎臨川人有雙桂堂叢書以性理說易而不離於象

數能會漢宋兩派之說而擷其精 乃近人易說之最善者也

可以補其闕失矣.至於象數.宜從漢學.但兩漢易說之存於今者.幾無一完本.

李氏集解.

唐李鼎祚編纂 汲古津逮 照曠均

有精刻盧氏雅雨堂刻本亦佳

雖搜羅는 찾아서 그물질하다宏富.然東鱗西爪.初學每苦其不能貫串. 則宜先閱 瞿塘 來知德氏集注.其於象也較詳.

來注頗盛行於

西南坊間多有

刻本浙江蕭山來氏

宗嗣亦尚有存書

且處處爲初學說法.反覆周詳.惟恐讀者不能了解. 與貌

爲艱深. 故意令人無從索解者. 殊有上下牀之別. 惟來氏僻處巫峽. 僅憑自力之研求.於古人之著述.未得徧覽. 故其間有自以爲創解者. 實早爲昔人所已言. 如用九用六之類.不勝枚舉.而其錯綜之說.尤爲後人所攻擊.蓋儒類積習.

凡講學者.或漢或宋.必標明一種旂幟.而附他人門戶之下.而後其學說始비로소

成立.雖亦不免一方之攻擊.而必能得一方之擁護. 來氏之學.非漢非宋.故受

兩方之攻擊.幾體無完膚矣. 然來氏於象.亦僅得十之五六.

初學閱之亦足爲一隅之擧矣

於數尤未能辨晳. 蓋數雖原本於河洛.但易有體數.有用數.有五行數.

오행수卽納

音數

納甲數.各有不同. 來氏不辨於此. 故遇(言數之卦).開口便錯.是則其所短矣.曰易註之言數者.宜閱何書. 曰易之言數.皆根於孔子繫傳之天一地二至天九

地十.河洛實數之淵源.雖漢學家盡力辨駁.而數理實有其徵驗. 非空言所可

掩也. 朱子啟蒙.演繹頗詳.宋人(丁易東氏)之數衍. 及近人江愼修之河洛精

. 更推闡盡致.餘如宋末(朱元昇)之三易備遺.於五行數尤有獨到之處.

邵子皇極先天數.雖自成一家.

邵子專以一二三四五六七八分陰陽剛柔之太少

乾兌離震但爲一二三四之代名詞耳惟先天圓方

二國於陰陽消長惟衍精詳妙合天然是於六日

七分之外又另闢蹊徑然以之入用仍取京圖

然於卦義發明實多.朱子啟蒙.

用其說十之八九. 自爲言象數者不可不讀之書也. 揚子太玄.은 풀어내다數甚精.足與

易道相證. 學者果有餘暇. 不妨涉獵及之.以廣理趣. 若溫公之(潛虛). 更不逮太玄遠矣. 或曰向옛날에之言易者.每曰理象氣數.理象與數.旣聞之矣.所謂氣者.是否

卽指卦氣.曰氣者.卽天地陰陽之氣.故一曰氣始.二曰形始.氣居於形之先.

包於氣之中.流行不息.運化無窮.大無外而細無間.皆氣之所周也.然氣不可

.故顯之以象.而節之以數.析之以理.言理言數言象.皆所以言氣也.固不僅

爲卦氣.卦氣但以明一歲四時七十二候之序耳.五行者.所以別氣之剛柔.

攴者.所以明氣之盛衰.納甲以象氣之交錯.納音以盡氣之變化.而出入內外.

節以制度.皆在於數.故明乎數之理.象與氣可坐而致焉.曰然則以何書爲善.

曰是宜求之於陰陽之學.向來陰陽術數之書.皆精麤雜揉.瑕瑜參半.數理精

蘊與儀象歷象考成五行大義諸書.皆宜參看.易緯乾鑿度乾坤鑿度稽覽等

.亦不盡無稽.是在讀者能審擇其當否耳.曰易道廣大.因不僅爲占卜之用.

然辭變象占.則占亦在易學所不廢.究竟書言占者.宜何道之從.曰周人占筮.

有專官.三易分稱.則三易當各有其占法.而今己失傳.孔子贊易.實以明道.

爲卜筮.故繫傳未述其法.僅大衍之數五十一節.明揲蓍求卦之方.而所以判

斷吉凶分別去取者.迄未嘗言之.後人但取左傳國策等書.所紀占筮之交而

模仿之.

啓蒙等

書是

以一爻變二爻變至六爻變.定爲去取之例.

卽用本卦

或用之卦

無論其模仿之.

啓蒙等

書是

以一爻變二爻變至六爻變.定爲去取之例.

卽用本卦

或用之卦

無論其

之爻或吉或凶.亦無方法以判斷其所以吉凶之故.亦如問籤枚卜者之偶中

卽以爲驗.不中亦無以明其不中之故.至精至神之易道.恐不如是也.夫易彰

往察來.斷無占而不驗.驗而無以知其所以然之理.特占法未明.左傳等書所

.但如紀算術者.祇載其得數.而未演其細草也.旣無細草.則安能知其方式.

不知其方式.又安知其數之從何而得哉.今但以其得數爲方式.宜其所求之

數無從而得矣.故火珠林術.

今術家所

用者是

以及六壬太乙奇門三式.其操術精

.尚無不驗.獨宋賢筮儀之揲蓍求卦.其驗否茫無把握.豈孔子知來藏往之

說爲欺人哉.是未得其法也.斷可識矣.蓋京焦之術.大儒所薄爲方技而不屑

道者.而不知西漢去古未遠.其飛伏世應五行順逆之法.必有所受

孔子上繫起中

孚下繫起咸與

京氏卦氯正合可見孔子以前必有此六十四卦之序故孔子於无意中卽舉此二卦爲言否則六十

四卦何卦不可爲繫辭之首又安有如是之巧合也卽此以推則世應飛伏之有所自來亦斷可識矣

故以之推

.非但吉凶確有可憑.而遠驗諸年.近徵之日.雖時刻分抄亦均有數之可稽.

管輅郭璞等占驗.亦均有準的.皆是術也.自王弼掃象.後之言易者.以性理爲

精微.凡陰陽五行九宮星象.皆目爲蕪穢而絕口不談.不知易道廣大悉備.

占筮本術數之一端.陰陽乃易道之大綱.旣言易.而屏除陰陽.旣不用術數.

仍欲言占卜.豈非至不可解之事乎.故余以爲欲明象占.宜求諸術數.更由術

數而求諸經義.方可謂技焉而進於道.必有超出尋常而爲術士所不及者.

術者但知其當然不知其所以然.果能一一以經義證之.以明其所以然之理.

此正吾輩之責耳.自邵子以降.如劉青田姚廣孝之儔.類皆能明其所以然之

故者.是以能知未來.如燭照數計.惜處專制政體之下.禁治陰陽壬遁之學.

其書者.必令銷毀.今所傳者.都爲抄本.傳寫謬訛.且多割裂改竄.僅略留形式.

尚不完備.又烏能施之於用乎.且不但禁三式諸書.卽易注之涉及神化.或精

論術數者.亦在所嚴斥.故士流所習.僅限於王注孔疏程傳朱義.此外皆屬違

.至有清中葉以後.居然上及馬鄭.而道咸之際.且盛行虞義者.則以阮儀徵

輩之提倡.而朝廷欲博右文之虛名.故爲之網開一面耳.今政體旣革.讀書尚

得自由.則易道之昌明.更無其他之阻力.學者宜力於全經以立其本.然後

廣求祕藉.旁及科學.凡有足以與吾易相發明者.無不可兼收並蓄.旣會其通

而徵諸實.然後由博反約.以擷其精英.而仍縮千里於尺幅.易之大用.庶乎其

可見歟.曰致力全經.更有無較善之注本.曰向之說易者.其空談性理無論矣.

卽能求諸象數者.要皆見卦說卦.見象說象.鮮能會六十四卦之通.合全易以

明一卦一爻者.勝清之季.惟焦氏循之易通釋.姚氏易

湖北局刻及

續皇淸經解

端木氏之

周易指.與紀氏之易問觀易外編.皆能自出機紓.不依旁古人門戶.會通全易

以立說者.雖各有所蔽.而精到之處.有非前人可及者.學者但依據經文以爲

去取.自能可得其所長.更可觸類而有所悟矣.又長沙彭氏.刻有易經解注傳

義辨正一書.雖以李氏集解王弼注程傳朱義爲本.而引據極博.各家注釋.

采取其精.攜此一編.足以薈百數十家之學說而便於參攷.亦近今之佳著也.

觀象之方法

或曰讀易之次序.旣聞之矣.觀象之方法如何.可得聞歟.曰君子所居而安者.

易之序也.所樂而玩者.爻之辭也.

繫上

故觀象必先觀其序.周易之卦序,與連

山歸藏不同.周易之彖辭爻辭.皆一依序卦之義.如乾坤後繼之以屯.屯後次

之以蒙.序卦傳己詳述其義.凡一卦之彖.及六爻之辭.卽本此義.與本卦之名

義而發揮之者也.如屯之義爲難.故六爻皆取屯難之義.蒙之六爻皆取蒙昧

之義.此猶其易見者也.如睽之六爻.曰喪馬勿逐自復.見惡人无咎.曰遇主於

.不觀卦名之義.其爻辭卽無從解釋.蓋睽有乖舛違戾之意.故其辭爻無不

乖違.夫喪馬宣逐者也.乃勿逐自復.見惡人宜有咎者也.乃无咎.遇王應於朝

.今乃遇之於巷.皆乖異之極者也.蓋當睽之時.禍福顚倒.見爲禍者或且爲

.見爲福者或反得禍.以下爻辭.亦皆類此.若不明睽之義.又何從而測之.

舉其一.餘可類推矣.旣觀其序之次.與本卦命名之義.以讀其辭.己思過半矣.

然後玩內外之卦象.爲陰爲陽爲正爲隅.

坎離正也中也震兌正也乾坤

巽艮隅也然乾坤先天亦爲中

或相.或相害.

大有初九无交害

害卽火克金也

如水火相息.水上火下爲旣濟.二女同居爲睽爲

革之類.皆合兩卦之名義而取象者.不可不察也.內外之義旣明.然後分六位

而觀之.別剛柔.分陰陽.察往來.定主爻.看應與之有無.辨爻位之當否.而六爻

之象始可睹矣.以驗爻辭及象傳.是否與所觀察者相合.如爻象之辭.出於所

觀察之外.則必詳求具故.或求諸中爻.或求諸互卦.更有未得.則求諸反卦.

氏所

謂綜

對卦.

卽來氏所謂錯

虞氏曰旁通

與上下交易之卦.

如山水蒙上下

相易水山蹇

則必有所得矣.

氏所

謂綜

對卦.

卽來氏所謂錯

虞氏曰旁通

與上下交易之卦.

如山水蒙上下

相易水山蹇

則必有所得矣.

氏所

謂綜

對卦.

卽來氏所謂錯

虞氏曰旁通

與上下交易之卦.

如山水蒙上下

相易水山蹇

則必有所得矣.

後天方位.乃恍然矣.蓋艮巽在先天圖.巽西南而艮西北.卽後天乾坤之位.

父坤母.故蠱卦之父母之象.卽由此而來.須知聖人彖象之辭.皆根於卦象.

一字之虛設.無一義之虛懸.卽假借之虛字.亦均與卦象有關.而象傳之韻.

字字分陰分陽.或雙聲疊韻.或一字兩音.則必陰陽相通.而以一字兼綰二卦

之義者也.精細緻密.剖析毫芒.故讀易必須字字咀嚼.字字反覆推求.方能得

聖人之意於萬一也.一卦旣明其大意.然後推之於類卦.以及六十四卦.證之

以繫傳雜卦.更參之以數理.準之以天時.易之道庶乎其可通矣.

 

 

 

 

 

 

 

 

 

學易筆談卷一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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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卦爻彖象辭(韓長庚의 주역·정역 중에서)

 

o. 卦辭

卦名의 아래에 를 취한 것이 卦辭이다. 괘는 걸다는 의미로 사물의 상을 걸어 메어 나타낸다는 뜻이다. 괘는 天道의 음양변화를 관찰하여 세운 것이므로 괘사는 천도의 음양변화를 말한 것이다. 元亨利貞이라는 는 천도의 운행을 표시하는 말이므로 괘사는 주로 원형이정으로서 표시한 것이다.

 

o. 爻辭

각 효 아래에 를 매어놓은 것은 효사이다. 효는 하고 하여 운동변화하고 있는 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효는 地道剛柔를 발휘하여 생한 것이므로 효사는 地道로서 만물의 情僞를 서로 느끼는 것을 말한 것이다.

 

효의 음양을 표시하기 위하여 陽爻라 하고 陰爻이라 하니 이는 乾坤九六의 뜻이다. 천지자연수에 , , , , 陽數이오 , , , , 陰數이다. 生長작용을 행하는데, 생장작용은 先端에 나타나므로 양효는 양수의 선단인 를 쓴다. 收斂작용을 행하는데, 수렴작용은 의 중앙에 있으므로 음효는 음수의 중앙인 을 쓰는 것이다. 또 자연수 가운데 成數···인데 ·는 양의 성수이오 ·은 음의 성수이다. 生長로부터 위로 올라가 에서 하므로 少陽이 되고 老陽이 된다. 收斂로부터 아래로 내려가 에서 하므로 少陰이 되고 老陰이 된다. 生長收斂極數이므로 모든 변동은 極數에서 일어난다는 이치에 의하여 ·에서 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괘의 乾坤老陽老陰이므로 로 되고 으로 되어 乾坤에서 천지의 一闔一闢하는 운동과 변통이 생하는 것이다. 라 함은 천지가 을 교하고 하여 변동한다는 뜻이며, 이 변동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을 쓴 것이다.

 

·坤卦 이외의 괘에도 양효를 라 하고 음효를 이라 하니, 각 괘는 비록 부모자녀의 구분이 있으나 모두 乾坤六子이고, 그 양효·음효가 모두 乾坤에서 생한 것이므로 양효에 를 쓰고 陰爻을 쓰는 것이다. 은 그 數爻에는 大小의 차이가 있으나 그 작용은 평등하다. 예컨대 사람에게 九竅가 있으되 九竅····前陰·候陰六官이오 九竅가 곧 六官이므로 ·은 평등한 것이다.

 

o. 彖辭

각 괘효에 彖曰이라 한 것은 彖辭이다. 이라 함은 함이니 이오 中氣하여 이 된다. 한다 함은 을 계승하여 운행한다는 뜻이므로 단사라 함은 地道天道卦辭를 이어받는 사이라 함이다. 그러므로 단사는 지도로서 천도인 괘사를 승수하여 설명한 것이다. 다만 괘사만을 해석한 註疏은 아니며, 주로 가 이어받는 日月·四時·晝夜의 상으로서 만물의 생장성하는 상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단사에는 괘사이외의 가 적지 아니한 것이다.

 

그런데 단사는 효사와 직접 관련되어 있으므로 繫辭에는 효사의 해석에 대하여 한 자가 그 彖辭를 관하면 하리라라 한 것이다. 단사는 모든 괘의 를 총론한 것이고 효사는 그 효가 하고 하여 운동변화함을 말한 것으로서 하나는 전체이고 하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단사는 전체와 부분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 상이한 바는 단은 괘 전체를 로 하여 천도와 지도를 말한 것이므로 上 二爻로 되고 下 二爻로 되고 中 二爻로 되어 천지조직의 상이 된다. 그러므로 먼저 괘 조직의 主爻의 뜻을 말하고 다음에 땅이 하늘을 잇는다는(地承天)의 이치에 의하여 天位上卦의 효로부터 말하여 점차로 人位地位에 이르게 된다. 그 까닭에 元亨利貞元亨上卦이 되고 利貞下卦이 되는 것이다. 효사는 각 효가 처하여 있는 로서 生生變動하는 을 말한 것인데, 가 만물을 생함에는 반드시 로부터 하여 상승하는 것이므로 효사는 下爻를 아래로 하고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 , , , , , 의 순서가 되며, 그 생성의 으로는 下卦中爻의 중심이 되고 上卦中爻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또 단사는 괘의 조직을 말한 것이므로 천의 發施한 씨를 가 이어받아 작성한다는 상을 취하므로 이는 천지의 조직된 공간을 함이다. 효사는 효의 운행을 말한 것이므로 하여 상승한 것을 이 과실로 여물게 한다는 상을 취한다. 이는 천지의 운행하는 공간을 상함이니, 은 씨와 과실을 주관하고 는 형질의 장함을 주관한 것이다. , , , 이오 天道流行이므로 단사는 천기의 하강함을 하여 상으로부터 하로 내려가는 순서를 취한 것이다. , , 성은 형질이오 地道는 형질의 凝做이므로 효사는 형질의 상승함을 하여 로부터 으로 올라가는 순서를 취한 것이다.

 

o. 象辭

의 아래와 아래에 象曰이라 한 것이 象辭이다. 각 괘·효의 象辭는 모든 괘의 상을 말한 것이고 각 아래의 象辭는 각 효의 상을 말한 것이다. 역경에는 모든 사물 중 어느 하나라도 아닌 것이 없다. 특히 象曰이라 한 것은 繫辭象也者像也라 하고 있고. 易簡의 뜻을 말함에는 象也者像此者也라 함과 같이 으로 되어 사람이 행하는 바의 人道를 상징한 것이다. 그러므로 象辭人道를 말한 것이다.

 

o. 文言

文言이라 함은 계사전에 書不盡言 言不盡意 然卽聖人之意 其不可見乎아 하여 으로서 역리를 알 수 있음을 말하니, ···은 곧 성인이 다 말하는 와 다 말하는 이므로 이 곧 문언이다. 乾坤이고 또 蘊蓄이므로 乾坤卦에 특히 文言을 두어 역학해석의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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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說綱領

 

程子曰 上天之載 無聲無臭 其體則謂之易 其理則謂之道 其用則謂之神

 

o 陰陽闔闢 便是易 一闔一闢 謂之變

 

o 命之曰易 便有理 若安排定 則更有甚理 天地陰陽之變 便如二扇磨 升降盈虛剛柔 初未嘗停息 陽常盈 陰常虧 故 便不齊 譬如磨旣行 齒都不齊 旣不齊 便生出萬變 故 物之不齊 物之情也 而莊周 强要齊物 然而物終不齊也 堯夫有言泥空終是著 齊物到頭爭

 

o 易中 只言反復往來上下

 

o 作易者 自天地幽明 至于昆蟲草木微細 無不合

 

o 聖人之道 如河圖洛書 其始 止於畫上 便出義 後之人 旣重卦 又繫辭 求之 未必得其理

 

o 因見賣兎者 曰 聖人 見河圖洛書而畫八卦 然何必圖書 只看此兎 亦可作八卦 數便此中可起 古聖人 只取神物之至著者耳 只如樹木 亦可見數

 

o 張閎中 問易之義 本起於數 曰 謂義起於數則非也 有理而後有象 有象而後有數 易 因象以知數 得其義 則象數在其中矣 必欲窮象之隱微 盡數之毫忽 乃尋流逐末 術家之所尙 非儒者之所務也 管輅 郭璞之學 是也 又曰 理无形也 故 因象以明理 理見乎辭矣 則可由辭以觀象 故 曰得其義 則象數在其中矣

 

o 謂堯夫曰 知易數爲知天 知易理爲知天 堯夫云 還須知易理爲知天

 

o 尹焞 問 易乾坤二卦 斯可矣 曰 聖人 設六十四卦 三百八十四爻 後世 尙不能了 乾坤二卦 豈能盡也 旣而曰 子以爲何人分上事 對曰 聖人分上事 曰 若聖人分上事 則乾坤二卦亦不須 況六十四卦乎

 

o 看易 且要知時 凡六爻 人人有用 聖人 自有聖人用 賢人 自有賢人用 衆人 自有衆人用 學者 自有學者用 君有君用 臣有臣用 无所不通

 

o 觀易 須看時然後 觀逐爻之才 一爻之間 常包函數意 聖人 常取其重者而爲之辭 亦有易中 言之已多 取其未嘗言者 亦不必重事 又有且言其時 不及其爻之才 皆臨時參考 須先看卦 乃看得繫辭

 

o 大抵卦爻始立 義旣具 卽聖人 別起義以錯綜之 如春秋時已前 旣已立例 到近後來 書得全別一般事 便書得別有意思 若依前例觀之 殊失之也

 

o 凡看書 各有門庭 詩 易 春秋 不可逐句看 尙書 論語 可以逐句看 聖人用意深處 全在繫辭 詩書 乃格言

 

o 古之學者 皆有傳授 如聖人作經 本欲明道 今人 若不先明義理 不可治經 蓋不得傳授之意云爾 如繫辭 本欲明易 若不先求卦義 則看繫辭不得

 

o 易學 後來 曾子 子夏煞到上面也

 

o 由孟子 可以觀易

 

o 今時人 看易 皆不識得易是何物 只就上穿鑿 若念得不熟與 就上添一德 亦不覺多 就上滅一德 亦不覺少 譬如不識此丌子 若滅一隻脚 不覺是少 添一隻脚 亦不知是多 若識則自添滅不得也

 

o 易 須是黙識心通 只窮文義 徒費力

 

朱子曰 聖人作易之初 蓋是仰觀俯察 見得盈乎天地之間 无非一陰一陽之理 有是理則有是象 有是象則其數 便自在這裏 非特河圖洛書爲然 蓋所謂數者 秪是氣之分限節度處 得陽必奇 得陰必偶 凡物皆然 而圖書爲特巧而著耳 於是 聖人因之而畫卦 其始也 只是畫一奇以象陽 畫一偶以象陰而已 但才有兩則便有四 才有四則便有八 又從而再倍之 便是十六 蓋自其无朕之中 而无窮之數已具 不待安排而其勢有不容已者 卦畫旣立 便有吉凶在裏 蓋是陰陽往來交錯於其間 其時則有消長之不同 長者便爲主 消者便爲客 事則有當否之或異 當者便爲善 否者 便爲惡 卽其主客善惡之辨 而吉凶見矣 故曰 八卦定吉凶 吉凶旣決定而不差 則以之立事而大業自此生矣 此 聖人作易 敎民占筮 而以開天下之愚 以定天下之志 以成天下之事如此 但自伏羲而上 只有此六畫 而未有文字可傳 到文王周公 乃繫之以辭 故曰聖人設卦觀象 繫辭焉而明吉凶

 

蓋是卦之未畫也 因觀天地自然之法象而畫 及其旣畫也 一卦自有一卦之象 象 謂有箇形似也 故 聖人 卽其象而命之名 以爻之進退而言 則如剝復之類 以其形之肖似而言 則如鼎井之類 此是伏羲卽卦體之全 而立箇名 如此 及文王 觀卦體之象而爲之彖辭 周公 視卦爻之變而爲之爻辭 而吉凶之象 益著矣

 

大率天下之道 只是善惡而已 但所居之位不同 所處之時旣異 而其幾甚微 只爲天下之人 不能曉會 所以聖人 因此占筮之法以曉人 使人居則觀象玩辭 動則觀變玩占 不迷於是非得失之途 所以是書 夏商周皆用之 其所言雖不同 其辭雖不可盡見 然皆太卜之官 掌之 以爲占筮之用 有所謂繇辭者 左氏所載 尤可見古人用易處 蓋其所謂象者 皆是假此衆人共曉之物 以形容此事之理 使人知所取舍而已 故 自伏羲而文王周公 雖自略而詳 所謂占筮之用則一 蓋卽那占筮之中 而所以處置是事之理 便在那裏了 故 其法 若粗淺 而隨人賢愚 皆得其用 蓋文王 雖是有定象 有定辭 皆是虛說此箇地頭 合是如此處置 初不黏著物上 故 一卦一爻足以包無窮之事 不可只以一事指定說 他裏面 也有指一事說處 如利建侯 利用祭祀之類 其他 皆不是指一事說 此所以見易之爲用 無所不該 無所不徧 但看人如何用之耳 到得夫子 方始純以理言 雖未必是羲文本意 而事上說理 亦是如此 但不可便以夫子之說 爲文王之說也

 

o 天地之間 別有甚事 只是陰與陽兩箇字 看是甚麽物事 都離不得 只就身上體看 才開眼 不是陰 便是陽 密拶拶在這裏 都不著得別物事 不是仁 便是義 不是剛 便是柔 只自家要做向前 便是陽 才收退 便是陰 意思才動 便是陽 才靜 便是陰 未消別看 只是一動一靜 便是陰陽 伏羲只因此畫卦 以示人 若只就一陰一陽 又不足以該衆理 於是 錯綜爲六十四卦 三百八十四爻 初只是許多卦爻 後來聖人 又繫許多事在下 如他書 則元有這事 方說出這箇道理 易則未曾有此事 先假託都說在這裏 又曰 陰陽 是氣 才有此理 便有此氣 才有此氣 便有此理 天下萬事萬物 何者不出於此理 何者不出於陰陽

 

o 易 只是陰陽錯綜 交換代易 莊生曰 易以道陰陽 不爲无見 如奇偶剛柔 便只是陰陽做了易

 

o 易 是陰陽屈伸 隨時變易 大低古今 有大闔闢 小闔闢 今人 說易 都無着模 聖人 便於六十四卦 只以陰陽奇偶 寫出來 至於所以爲陰陽 爲古今 乃是此道理

 

o 龜山 過黃亭詹季魯家 季魯問易 龜山 取一張紙 畫箇圈子 用墨塗其半 云這便是易 此說 極好 易 只是一陰一陽 做出許多般樣

 

o 潔靜精微之謂易 自是不惹着事 只懸空說一樣道理 不比似他書 各着事上說 所以後來道家取之 與老子爲類 便是老子說話 也不就事上說 又曰 潔靜精微 是不犯手

 

o 問卦下之辭爲彖辭 左傳以爲繇辭 何也 曰 此只是彖辭 故 孔子曰 知者觀其彖辭 則思過半矣 如元亨利貞 及文王所繫卦下之辭 以斷一卦之吉凶 此名彖辭 彖 斷也 陸氏音中語所謂彖之經也 大哉乾元以下 孔子釋經之辭 亦謂之彖 所謂彖之傳也 爻下之辭 如潛龍勿龍 乃周公所繫之辭 以斷一爻之吉凶也 天行健君子以自彊不息 所謂大象之傳 潛龍勿龍陽在下也 所謂小象之傳 皆孔子所作也 天尊地卑以下 孔子所述繫辭之傳 通論一經之大體凡例 无經可附 而自分上繫下繫也 左氏所謂繇字從系 疑亦是言繫辭 繫辭者 於卦下 繫之以辭也

 

o 通書云 聖人之精 畫卦以示 聖人之縕 因卦以發 精 是聖人本意 縕 是偏傍帶來道理 如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是聖人本意底 如文言 繫辭等孔子之言 皆是因而發底 不可以例作重看

 

o 易之有象 其取之有所從 其推之有所用 非苟爲寓言也 然兩漢諸儒 必欲究其所從 則旣滯泥而不通 王弼以來 直欲推其所用 則又疎略而無據 二者 皆失之一偏而不能闕其所疑之過也 且以一端論之 乾之爲馬 坤之爲牛 說卦 有明文矣 馬之爲健 牛之爲順 在物 有常理矣 至於案文責卦 若屯之有馬而無乾 離之有牛而無坤 乾之六龍則或疑於震 坤之牝馬則當反爲乾 是皆有不可曉者 是以 漢儒求之說卦而不得 則遂相與創爲互體變卦五行納甲飛伏之法 參互以求 而幸其偶合 其說雖詳 然其不可通者 終不可通 其可通者 又皆傳會穿鑿而非有自然之勢 雖其一二之適然而無待於巧說者 爲若可信 然上無所關於義理之本源 下無所資於人事之訓戒 則又何必苦心極力 以求於此而欲必得之哉 故 王弼曰 義苟應健 何必乾 乃爲馬 爻苟合順 何必坤 乃爲牛 而程子亦曰 理無形也 故假象以顯義 此其所以破先儒膠固支離之失而開後學玩辭玩占之方 則至矣 然觀其意 又似直以易之取象 無復有所自來 但如詩之比興 孟子之譬喩而已 如此 則是說卦之作 爲无所與於易 而近取諸身 遠取諸物者 亦剩語矣 故 疑其說 亦若有未盡者 因竊論之 以爲易之取象 固必有所自來 而其爲說 必已具於太卜之官 顧今 不可復考 則姑闕之 而直據辭中之象 以求象中之意 使足以爲訓戒而決吉凶 如王氏程子與吾本義之云者 其亦可矣 固不必深求其象之所自來 然亦不可謂假設而遽欲忘之也

 

o 伏羲畫八卦 只此數畫 該盡天下萬物之理 學者於言上會得者 淺 於象上會得者 深 王輔嗣 伊川 皆不信象 如今 却不敢如此說 只可說道不及見這箇了 且從象以下說 免得穿鑿 某嘗作易象說 大率以簡治繁 不以繁御簡

 

o 易之象 似有三樣 有本畫自有之象 如奇畫象陽 偶畫象陰 是也 有實取諸物之象 如乾坤六子 以天地雷風之類 象之 是也 有只是聖人 以意自取那象來 明是義者 如白馬翰如 載鬼一車之類 是也

 

o 看易 若是靠定象去看 便滋味長 若只恁地懸空看 也沒甚意思 又曰 說易 得其理 則象數在其中 固是如此 然泝流以觀 却須先見象數的當下落 方說得理 不走作 不然 事無實證 則虛理易差也

 

o 上古之時 民心昧然 不知吉凶所在 故 聖人作易 敎之卜筮 吉則行之 凶則避之 此是開物成務之道 故 繫辭云 以通天下之志 以定天下之業 以斷天下之疑 正謂此也 初但有占而無文 往往如今人用火珠林起課者相似 但用其爻而不用其辭 則知古人占不待辭而後見吉凶 至孔子 又恐人不知其所以然 故 又復遂爻解之 謂此爻所以吉者 謂以中正也 此爻所以凶者 謂不當位也 明言之 使人易曉爾 至如文言之類 却又就上面發明道理 非是聖人本意 知此 方可學易

火珠林 : 동전으로 점치는 방법, 起課 : 점치는 것.

 

o 聖人一部易 皆是假借虛設之辭 蓋緣天下之理 若正說出 便只作一件用 唯以象言 則當卜筮之時 看是甚事都來應得

 

o 上古之易 方是利用厚生 周易 始有正德意 如利貞 是敎人利於貞正 貞吉 是敎人貞正則吉 至孔子 則說得道理又多

 

o 易 只是設箇卦象 以明吉凶而已 更無他說 又曰 易 是箇有道理底卦影 易以卜筮作 許多理 便也在裏

 

o 易 本卜筮之書 後人 以爲止於卜筮 至王弼 用老莊解 後人 便只以爲理而不以爲卜筮 亦非 想當初伏羲畫卦之時 偶見得一是陽 二是陰 從而畫放 那裏 只是陽爲吉 陰爲凶 无文字 後 文王 見其不可曉故 爲之作彖辭 或占得爻處 不可曉故 周公 爲之作爻辭 又不可曉故 孔子爲之作十翼 皆解當初之意 今人 不看卦爻 而看繫辭 是猶不看刑統而看刑統之序例也 安能曉 今人 須以卜筮之書看之 方得 不然 不可看易

 

刑統 : 송나라 형법서

 

o 易 只是爲卜筮而作 故 周禮 分明言太卜掌三易 連山 歸藏 周易 古人 於卜筮之官 立之凡數人 秦 去古未遠 故 周易亦以卜筮 得不焚 今人 才說易是卜筮之書 便以爲辱累了易 見夫子說許多道理 便以爲易只是說道理 殊不知其言吉凶悔吝 皆有理 而其敎人之意 无不在也 而今所以難理會 時蓋緣亡了那卜筮之法 如太卜掌三易之法連山 歸藏 周易 便是別有理會周易之法 而今 却只有上下經兩篇 皆不見許多法了 所以難理會 今人 却道聖人言理 而其中因有卜筮之說 他說理後 說從那卜筮上來做麽

 

o 易 只是與人卜筮 以決疑惑 若道理當爲 固是便爲 若道理不當爲 自是不可做 何用更占 却是有一樣事 或吉或凶或兩岐道理 處置不得 所以用占

 

o 今學者諱言易本爲卜筮作 須要說做爲義理作 若果爲義理作時 何不直述一件文字 如中庸大學之書 言義理以曉人 須得畫八卦則甚

 

o 陽爻多吉 陰爻多凶 又看他所處之地位如何 易中 大槪陽吉而陰凶 間亦有陽凶而陰吉者 何故 蓋有當爲 有不當爲 若當爲而不爲 不當爲而爲之 雖陽 亦凶

 

o 易中 却是貞吉 不曾有不貞吉 都是利貞 不曾說利不貞 如占得乾卦 固是大亨 下則云利貞 蓋正則利 不正則不利 至理之權輿 聖人之至敎 寓其間矣 大率是爲君子設 非小人盜賊所得竊取而用 橫渠云 易爲君子謀 不爲小人謀 極好

 

o 易中利字 多爲占者設 如利涉大川 是利於行舟也 利有攸往 是利於啓行也 利用祭祀 利用享祀 是卜祭吉 田獲三狐 田獲三品 是卜田吉 公用享于天子 是卜朝覲吉 利建侯 是卜立君吉 利用爲依遷國 是卜遷國吉 利用侵伐 是卜侵伐吉之類

 

o 今人讀易 當分爲三等看 伏羲之易 如未有許多彖象文言說話 方見得易之本意 只是要作卜筮用 如伏羲畫卦 那裏有許多文字言語 只是某卦有某象 如乾有乾之象 坤有坤之象而已 今人 說易 未曾明乾坤之象 便先說乾坤之理 所以說得都无情理 及文王周公 分爲六十四卦 添入乾元亨利貞 坤元亨利牝馬之貞 早不是伏羲之意 已是文王周公 自說出一般道理了 然猶是就人占處說 如占得乾卦 則大亨而利於正耳 及孔子繫易 作彖象文言 則以元亨利貞 爲乾之四德 又非文王之易矣

 

o 讀易之法 竊疑卦爻之辭 本爲卜筮者斷吉凶而具訓戒 至彖象文言之作 始因其吉凶訓戒之意 而推說其義理以明之 後人 但見孔子所說義理 而不復推本文王周公之本意 因鄙卜筮 以爲不足言 而其所以言者 遂遠於日用之實 類皆牽合委曲 偏主一事而言 无復包含該貫曲暢旁通之妙 若但如此 則聖人 當時 自可別作一書 明言義理 以詔後世 何用假託卦象 爲此艱深隱晦之辭乎 故 今欲凡讀一卦一爻 便如占筮所得 虛心以求其辭義之所指 以爲吉凶可否之決然後 考其象之所以然者 求其理之所以然者 推之於辭 使上自王公 下至民庶 所以修身治國 皆有可用 私竊以爲如此求之 似得三聖之遺意

 

o 孔子之易 非文王之易 文王之易 非伏羲之易 伊川易傳 自是程氏之易也 故 學者且依古易次第 先讀本文 則見本旨矣

 

o 看易 須是看他未畫卦已前 是怎生模樣 却就這裏 看他許多卦爻象數 非是杜撰 都是合如此 未畫已前 便是寂然不動 喜怒哀樂未發之中 只是箇至虛至靜而已 忽然在這至虛至靜之中 有箇象 方說出許多象數吉凶道理 所以禮曰潔靜精微易敎也 蓋易之爲書 是懸空做出來 如書 便眞箇有這政事謀謨 方做出書來 詩 便眞箇有這人情風俗 方做出詩來 易 却都无這已往底事 只是懸空做底 未有爻畫之先 在易則渾然一理 在人則湛然一心 旣有爻畫 方見得這爻是如何 這爻又是如何 然而皆是就這至虛至靜中 做出許多象數來 此其所以靈

 

o 易 須是錯綜看 天下事无不出於此 善惡是非得失 以至於屈伸消長盛衰 看甚事都出於此 伏羲以前 不知如何占考 至伏羲 將陰陽兩箇 畫卦以示人 使人於此 占考吉凶禍福 一畫爲陽 二畫爲陰 一畫爲奇 二畫爲偶 遂爲八卦 又錯綜爲六十四卦 凡三百八十四爻 文王 又爲之彖辭 以釋其義 无非陰陽消長盛衰屈伸之理 聖人之所以學者 學此而已

 

o 易 最難看 其爲書也 廣大悉備 包涵萬理 无所不有 其實 是古者卜筮書 不必只說理 象數亦可說 初不曾滯於一偏 某近看易 見得聖人 本无許多勞攘 自是後世一向妄意增減 便要作一說 以强通其義 所以聖人經旨 愈見不明 且如解易 只是添虛字去 迎過意來 便得 今人 解易 乃去添他實字 却是借他做己意說了 又恐或者一說 有以破之 其勢不得不支離更爲一說 以護吝之 說千說萬 與易全不相干 此書 本是難看底物 不可將小巧去說 又不可將大話去說

 

o 易 難看 不比他書 易說一箇物 非眞是一箇物 如說龍 非眞龍 若他書則眞是實 孝悌 便是孝悌 仁 便是仁 易中 多有不可曉處

 

o 易 難看 無箇言語可形容得 蓋爻辭 是說箇影象在那裏 无所不包

 

o 看易 須著四日看一卦 一日 看卦辭彖象 兩日 看六爻 一日 統看 方子細 又曰 和靖學易 一日只看一爻 此物事成一片 動著便都成片 如何看一爻得 又曰 先就乾坤二卦上 看得本意了 則後面 皆有通路

 

o 易 大槪欲人恐懼修省 今學易 非必待遇事而占 方有所戒 只平居玩味 看他所說道理 於自家所處地位 合是如何 故 云居則觀其象而玩其辭 動則觀其變而玩其占 孔子所謂學易 正是平日常常學之 想見聖人之所讀 異乎人之所謂讀 想見胸中 洞然於易之理 无纖毫蔽處 故 云可以无大過

 

o 讀易之法 先讀正經 不曉 則將彖象繫辭來解 又曰 易爻辭 如籤辭

 

o 問易如何讀 曰 只要虛其心 以求其義 不要執己見讀 他書亦然

 

o 問讀易 未能浹洽 何也 曰 此須是此心虛明寧靜 自然道理流通 方包羅得許多義理 蓋易 不比詩書 他是說盡天下後世无窮无盡底事理 只一兩字 便是一箇道理 又人須是經歷天下許多事變 讀易 方知各有一理 精審端正 今旣未盡經歷 非是此心大段虛明寧靜 如何見得 此不可不自勉也 又曰 如今 不曾經歷得許多事過 都自揍他道理不着 若便去看 也卒未得他受用 孔子晩而好易 可見這書卒未可理會

 

o 問易本義 何專以卜筮爲主 曰 且須熟讀正文 莫看註解 蓋古易 彖象文言 各在一處 至王弼 始合爲一 後世諸儒 遂不敢與移動 今難卒說 且須熟讀正文 久當自悟

 

o 問讀本義 所釋卦辭 若看得分明 則彖辭之義亦自明 只須略提破此是卦義 此是卦象 卦體 卦變 不必更下注脚矣 曰 某當初作此文字時 正欲如此 蓋彖傳 本是釋經之卦辭 若看卦辭分明 則彖亦可見 但後來 要重整頓過 未及 不知今所解者 能如本意否 又曰 某作本義 欲將文王卦辭 只大綱依文王卦辭略說 至其所以然之故 却於孔子彖辭中發之 且如大畜利貞 不家食吉 利涉大川 只是占得大畜者 爲利正 不家食而吉 利於涉大川 至於剛上而尙賢等處 乃孔子發明 各有所主 爻象亦然 如此 則不失文王本意 又可見孔子之意 但而今 未暇整頓耳

 

o 某解一部易 只是作卜筮之書 今人 說得來太精了 更入粗不得 如某之說 雖粗 却入得精 精義皆在其中 若曉得某說 則曉得羲文之易 本是如此 元未有許多道理在 方不失易之本意 今未曉得聖人作易之本意 便先要說道理 縱饒說得好 只是與易元不相干

 

o 某之易 簡略者 當時 只是略搭記 兼文義 伊川及諸儒皆說了 某只就語脈中 略牽過這意思

 

o 近得趙子欽書 云 語孟 說極詳 易 說太略 此 譬如燭籠 添一條骨 則障了一路明 若能盡去其障 使之統體光明 乃更好 蓋著不得詳說也

 

o 看易 先看某本義了 却看程傳 以相參考 如未看他易 先看某說 却也易看 蓋不爲他說所汨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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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傳書

 

易 變易也 隨時變易 以從道也 其爲書也 廣大悉備 將以順性命之理 通幽明之故 盡事物之情 而示開物成務之道也 聖人之憂患後世 可謂至矣 去古雖遠 遺經 尙存 然而前儒 失意以傳言 後學 誦言而忘味 自秦而下 蓋无傳矣 予生千載之後 悼斯文之湮晦 將俾後人 沿流而求源 此傳所以作也 易有聖人之道 四焉 以言者 尙其辭 以動者 尙其變 以制器者 尙其象 以卜筮者 尙其占 吉凶消長之理 進退存亡之道 備於辭 推辭考掛 可以知變 象與占 在其中矣 君子 居則觀其象而玩其辭 動則觀其變而玩其占 得於辭 不達其意者 有矣 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也 至微者 理也 至著者 象也 體用 一源 顯微无間 觀會通 以行其典禮 則辭无所不備 故 善學者 求言 必自近 易於(~)近者 非知言者也 予所傳者 辭也 由辭以得其意 則在乎人焉

 

有宋元符二年己卯正月庚申 河南程頤正叔 序

 

1. 易 變易也 隨時變易 以從道也

은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 때에 따라서 변하고 바뀜으로써 도에 나아간다.

 

() : 쫓다, 따르다, 나아가다.

變易(변역) : 은 변하다, 은 바뀌다.

 

2. 其爲書也 廣大悉備 將以順性命之理 通幽明之故 盡事物之情 而示開物成務之道也 聖人之憂患後世 可謂至矣

그 글됨은 넓고 크고 모두 갖추어서 장차 性命의 이치에 따르고 어둠과 밝음의 연고에 통하고 사물의 을 다하여 을 열고 임무를 이루는 를 드러냈으니 성인이 후세를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이 지극하다고 말할 수 있다.

 

() : 따르다.

性命(성명) : 인성과 천명.

幽明(유명) : 어두움과 밝음.

() : 實情, 실제의 사정이나 정세.

開物成務(개물성무) : 開物은 물을 열다, 成務는 임무를 완성하다.

· 천하의 사물을 개통시키고 천하의 사업을 성치시킨다는 의미.

· 복서에 의해 길흉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길흉을 알게 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 계발시키고 어떤 목표에 도달하게 한다는 의미.

 

3. 去古雖遠 遺經 尙存 然而前儒 失意以傳言 後學 誦言而忘味 自秦而下 蓋无傳矣

옛날은 가고 비록 머나 남아 있는 은 아직 있다. 그러나 앞 시대의 선비는 뜻을 잃고서 말을 전했고, 후학은 말을 외웠으나 뜻을 잃었으니 나라 히후로 내려가면서부터는 전하는 바가 없었다.

 

() : 남기다, 남다. () : , 의의, 취향.

() : , 의미, 생각.

 

4. 予生千載之後 悼斯文之湮晦 將俾後人 沿流而求源 此傳所以作也

나는 천년의 뒤에 태어나 斯文이 어둡고 막힌 것을 슬퍼하여 장차 후인으로 하여금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구할 수 있게 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易傳을 지어 전하는 까닭이다.

 

() : 슬퍼하다. () : 막히다. () : 그믐, 어둡다. 沿() : 따르다.

斯文(사문) : 유교에서 유교의 문화를 일컫는 말, 또는 유학자.

將俾後人 : 은 장차, ~로 하여금 ~하게 하다.

 

5. 易有聖人之道 四焉 以言者 尙其辭 以動者 尙其變 以制器者 尙其象 以卜筮者 尙其占 吉凶消長之理 進退存亡之道 備於辭 推辭考掛 可以知變 象與占 在其中矣

 

5.1 易有聖人之道 四焉 以言者 尙其辭 以動者 尙其變 以制器者 尙其象 以卜筮者 尙其占

에는 성인의 가 네 가지가 있으니 말로써 하는 자는 그 를 숭상하고, 움직임으로써 하는 자는 그 을 숭상하고 기물을 만드는 자는 그 을 숭상하고, 卜筮하는 사람은 그 을 숭상한다.

 

5.2 吉凶消長之理 進退存亡之道 備於辭 推辭考掛 可以知變 象與占 在其中矣

길흉과 줄어들고 자라는 이치와 진퇴와 존망의 도는 에 갖추어져 있으니 를 미루어 를 상고하면 을 알 수 있음이니 은 그 속에 있다.

() : 상고하다, 밝히다.

 

6. 君子 居則觀其象而玩其辭 動則觀其變而玩其占 得於辭 不達其意者 有矣 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也

군자는 거처하면 을 보고서 그 를 완미하며, 하면 을 보고서 그 을 완미하니, 에서 얻어 그 뜻에 통달하지 못한 자가 있거니와 에서 얻지 못하고서 그 뜻에 통달한 자는 아직 없었다.

 

() : 희롱하다, 사랑하다, 완미하다, 뜻을 잘 생각하여 음미하다. () : 말씀, .

 

7. 至微者 理也 至著者 象也 體用 一源 顯微无間 觀會通 以行其典禮 則辭无所不備

지극히 은미한 것은 이며 지극히 드러난 것은 이다. 은 하나의 근원이며 나타나고 은미함에 틈이 없으니 뜻이 통고 이치가 막힘이 없는 것을 보아서 그 떳떳한 법도를 행하면 는 갖추어지지 않는 바가 없다.

 

會通(회통) : 경전의 어려운 뜻이 통하고 이치가 막히지 않는 것, 경전의 어려운 뜻을 잘 통하도록 해석함.

典禮(전례) : 나라의 길흉에 관한 의식, 일정한 의식, 떳떳한 법도나 常道.

 

8. 故 善學者 求言 必自近 易於近者 非知言者也 予所傳者 辭也 由辭以得其意 則在乎人焉

그러므로 잘 배우는 자는 말을 구함에 반드시 가까운 데에서 하니 가까움을 쉽게 여기는 자는 말을 아는 자가 아니다. 내가 전하는 것은 로 인해서 그 뜻을 얻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有宋元符二年己卯正月庚申 河南程頤正叔 序

나라 元符 二년 기묘 정월 경신에 하남 정이·정숙은 글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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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대한 단상

서양의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주역에 대해 주역은 자연과 같이 사람들 스스로가 발견할 때를 기다린다. 자기 자신을 알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라고 말했다. 주역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어보면 아직도 선뜻 대답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십 몇 년 이상 주역공부의 귀거래처歸去來處를 찾기 위해 공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추어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역이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불현듯 주역을 공부하면서 느낀 단편적인 생각을 정리해보는 일도 또 다른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주역에 대한 이해가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더라도 학역자學易者의 입장에서 내내 화두처럼 머물고 있는 의문점을 두려움 없이 펼쳐보이는 것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주역이라는 큰 산에 들어서서 길을 헤매는 학인이거나 주역공부를 시작하는 초학자가, 주역공부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반추해보는 계기는 될 수 있을 듯싶다.

 

 

 

1. 주역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

 

데카르트 이전 서양을 지배하고 있었던 사유체계는 기독교 신학이었다. 신학의 모태가 된 그리스 헬레니즘 철학은 진리계와 현상계를 이분법적 대칭구조로 보는 관점으로서 세계가 순수한 진리계와 세속의 인간계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이런 사유체계의 바탕위에서 인간은 순수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야 구원된다는 믿음의 종교가 태어났다. 어쩌면 이런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동양 최고의 학문인 주역에서는 천도天道, 지도地道 및 인도人道를 하나로 묶어 하늘과 땅이 행하는 길의 변화에 맞추어 인간이 걸어가야 하는 도리를 제시한다. 주역은 인간이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에 마주쳤을 때 하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출발하였다.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사람은 점을 쳐 얻은 64괘 중 하나의 괘와 그 괘의 특정한 효사로 나타내는 하늘의 뜻을 해석하여 현실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천도의 이치를 궁구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위로는 하늘의 덕을 본받고, 삶속에서는 학문을 익히고 실천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신학과 주역의 관점 차이는 무엇일까. 주역은 천도, 즉 하느님의 뜻이 음양의 변화로 나타난다고 보고 괘와 상을 읽어 그 뜻을 읽어낸다. 주역 점괘의 해석에서는 천명天命과 천덕天德을 많이 언급한다. 천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태양과 달이 포함된 천체가 움직이는 원리는 과학법칙으로 기술될 수 있지만 주역에서 말하는 천도는 음양, 또는 음양오행으로 기술되는 자연변화의 법칙이다. 주역은 먼저 점괘를 뽑는 행위를 통해 천명을 묻는다. 어떤 괘에서 나타난 천명, 곧 길흉은, 점을 치는 사람의 밖에서 따로 독립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점괘는 점치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기에 언제나 점을 치는 자에게 좋은 괘일지라도 그에 맞는 덕을 갖추라고 말한다. 더욱이 점괘가 나쁘게 나오면 때를 기다리거나 덕을 기를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굳이 점이라는 수단을 통하지 않고도 늘 스스로 그 때와 위치(·)에 맞게 대처하고, 모든 일에 삼가는 자세를 가진다면, 그 자체가 천명에 대한 보편적 대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주역은 점치는 데서 출발했지만, 점을 칠 필요가 없는 군자가 되는 길을 제시하는 학문이라고 생각된다.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신이라는 표현은 천도의 변화라는 의미와 함께 쓰인다. ‘신묘함으로 다가올 일을 알고神以知來’, ‘신은 음양과 같아 헤아리지 못한다陰陽不測之謂神’, ‘신이란 만물을 묘하게 하고서 말을 하는 자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와 같은 말을 들 수 있다. 신은 음양의 변화작용으로 신묘한 작용이 나타나고, 늘 천도와 함께 하기에 우주의 시공간 어딘가에서 따로 거처한다고 볼 수 없다. 사람이 이러한 신의 묘용, 즉 신도神道를 깨달으면 길흉의 결과에 자신의 의지가 좌우되지 않게 된다. 이는 주역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이 신인합일神人合一 또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물신주의의 팽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조화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소외, 자연을 개발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인간중심적 사고로,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를 둘러싼 타자로부터 고립되어 간다. 이 같은 소외현상에 대해 주역의 천인합일관은, 자연과 공존하고 사람과 사람, 자신과 타자와의 공생의 관계를 통해 조화를 도모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주역은 관계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여겨진다.

 

 

2. 주역에서 말하는 와 과학적 법칙

 

근대 서양의 과학문명이 발전하게 된 이면에는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연역적인 사유방식의 체계를 수립한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신본주의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의 길로 나아감으로써 사유의 뿌리가 그리스의 헬레니즘 사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천상계와 물질계를 확실히 단절하여 물질계의 이치를 밝히는 사유의 방법을 확립하였다. 데카르트가 구축하려고 하였던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진리체계는, 그대로 과학정신으로 이어져 분석적, 추론적, 환원적, 연역적 탐구라는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데카르트는 사유의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개념은 버리고 버렸다. 그러면서 그는 끊임없이 라는 물음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극한점까지 생각의 확장을 이어나갔다. 그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이다.

 

이런 사유의 토대 위에서 뉴턴은 물질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운동법칙을 발견하였다. 그는 물리계의 기본 운동법칙인 제1관성의 법칙, 2가속도의 법칙, 3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수식으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물질세계의 법칙이지만 결코 경험적으로 느낄 수 없는, 현상의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원리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다가 사물을 작동시키고 있는 법칙을 찾아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주역의 사유방법은 태극이 펼쳐낸 음양의 대대大對라는 움직임 속에서 변화의 이치를 궁구한다. 사물들 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치면서 다시 나아가는 변증법적 변화과정 속에 있다. 그 관계는 음양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기에, 점치는 자占者는 변화에 앞서 드러나는 미묘한 징조를 음양의 관점으로 먼저 읽어낸다. 주역을 공부하는 학인들은 형이상학적인 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한다. 주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개념을 중요시 하였다. 여기서 격물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그 지극한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고, 치지는 알고 있는 지식을 미루어 알지 못하는 영역까지 도달하는 의미다. 사물의 이치, 격물의 이치가 뉴턴과 데카르트가 찾았던 형이하학적 이치와 다른 것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중력장에서 태양계에 포함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치는 자연과학의 운동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주역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적인 리는 무엇일까. 주역이 물질계의 운행법칙이 아닌 형이상학적 진리로만 해석 가능한 수단에 머문다면 진리의 한쪽 면만 인정하는 체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주자는 그 때까지 이룩한 과학적 지식을 흡수하여 주자학의 이론적 토대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주자가 말하는 형이상학적 리와 현대과학의 물리법칙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주역에서 말하는 하늘의 운행도 물리적 법칙을 따라 움직일 뿐인데,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말하는 주역은 천도를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천지의 덕으로 해석한다. 근본적으로 천지가 운행하는 물리의 세계와 인간본성의 작동방식은 다르다. 천인합일을 주장하는 주역의 세계관은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경험적으로는 물리를 아무리 극한으로 연구해도 밝혀지는 것은 형이하학적인 법칙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자의 마음이 극미의 물리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주역을 통해 천도, 지도와 인도, 그리고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통합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경험적 차원을 넘어선 미지의 영역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역공부의 궁극적인 귀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주역이라는 말은 곧 역술, 역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천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의 공력으로 이루어진 주역의 사유가 우리가 처한 현실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가질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주역 안에 녹아들어 있는 지혜를 어떻게 받아들여 펼칠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만일 주역의 원리가 너무 고원하다고해서 신비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바라보거나, 주역공부가 그저 성인이 되기 위한 공부라고만 인식한다면 현실과 더불어 살아 숨쉬는 학문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를 거부한 채 현실과 담을 쌓고서 초연하게 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군자의 모습만을 강조하다면 결국 주역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른다. 변화의 마땅함을 추구하는 주역이 시대와 함께할 수 없다면, 수많은 학자들로부터 몇 천 년의 기나긴 담금질을 견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나는 누구이며, 사람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며, 사물은 무엇이고 사물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는지라는 물음에 대해 주역은 그 답을 안내하는 빛으로 오랜 세월 비쳐주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금껏 주역이 밝혀 온 빛은 더 이상 필요 없을지 모른다.

오랜 시절 주역이 던져주었던 빛은 보이는 것을 넘어선 신비의 세계에서 오는 빛이고 인간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지혜의 불빛이다. 그러기에 첨단의 과학시대에도 불구하고 주역이 가진 지혜의 빛을 밝혀야 될 당위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3. 시간의 문제

 

현대로 접어들면서 뉴턴-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아닌 양자역학의 법칙으로 기술할 수 있는 극미의 세계와 상대성원리로 해석되는 극대의 세계가 탐구되면서 뉴턴의 운동법칙들은 한계를 노정하게 되었다. 열역학, 양자역학, 일반상대성 원리 등이 우주의 보편적 법칙으로 제시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최근 들어, 우리가 보는 세계는 인식할 수 있는 단순계가 아니라 복잡계이므로 인식 사고의 과정 자체에 한계가 내재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극미의 세계, 극대의 세계는 데카르트·뉴턴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시간-공간좌표계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관찰자와 시간의 문제이다. 나란 무엇이고, 시간이란 무엇인가. 나란 존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기에 어떻게 시간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가. 시간은 공간적 변화를 통해서 감각체계 안에 들어와 인식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시간의 흐름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 ·공간을 체용구조로 본다면, 시간을 체라 하고 공간은 용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주역에서는 시중時中, 시의時義, 시의時宜, 시위時位라 해서 그 때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 때란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 것일까. 시는 어느 위치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시간은 태극 안에서 음과 양이 갈마들며 움직이는 공시성共時性의 시간이면서 내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시간이다. 주역 설괘전에서 역은 수를 거스른다易 逆數也라고 기술하고 있고, 계사전에서는 신묘함으로써 미래를 알고 지혜로써 행하는 바를 감춘다神以知來 知以藏往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주역의 점괘로 나타내는 예측은 시간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삶을 살면서 늘 분별하는 관점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미래를 미리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시간의 제한은 바로 인간에게 부여된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의 길흉은 시간과의 불일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모습처럼 과거-현재-미래가 서로 물고 물리는相卽相入 공시성의 시간이라면 점을 통해 아는 미래예측은 무엇이고, 운명은 무엇일까.

 

 

4. 우주관의 문제

 

절대적 시간이 없다면 시·공간 구조로 설명되는 우주관은 무엇일까. 현대과학의 성과인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빅뱅이론에 의하면 시간은 있음에 대비되는 없음으로서의 상대적인 무가 아닌 절대적인 무, 그 한 점에서 탄생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빅뱅 후 시공간은 무수한 차원으로 퍼져 나가면서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64괘로 이루어진 주역은 어떤 우주관을 내포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 괘와 효를 얻는 바로 그 순간, 시위時位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설명해주는 우주관이 주역에 내재되어 있지 않다면 주역의 점은 어쩌면 논리적 타당성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역 64괘의 구성은 8괘의 착종錯綜으로 이루어진다. 64괘는 건과 곤이 본체로 서면 그 안에서 일음一陰과 일양一陽이 발동하여 하늘과 땅이 기운을 교환하고 수화·의 작용을 통해 팔괘가 착종되면서 괘가 차례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본다. 건곤에서 시작한 괘들은 기제旣濟, 미제未濟卦로 끝나지만 다시 시작하여終則有始 무궁히 순환하는 모습이다. 천부경에서도 하나에서 시작하여 수없이 가고 오고 다시 하나로 순환하는 우주의 모습을 제시한다. 주역의 우주관은 공시성의 관점에서는 양자역학 및 카오스이론, 그리고 복잡계라는 관점에서는 혼돈계, 태극-음양-사상으로 분화하는 관점에서는 자기조직하는 시스템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28별자리와 같은 고대 천문 역법이론에 토대를 둔 점괘의 해석은 어떤 과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5. 예측의 문제

 

미래예측은 주역이 탄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를 빅데이터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대신하려고 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수준은 이미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에서 보았듯이 신선들의 놀이라고 간주되어왔던 바둑을 계산 가능한 게임으로 격하시켰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미래예측은 복잡한 현상계에서 중요한 인자들을 추려내어 그 인자들의 영향을 감안한 예측모델에 의하여 수행된다. 따라서 미래예측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변수들을 정밀히 뽑을 수 있느냐, 그리고 변수들 간의 관계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주역의 미래예측은 어떤 것인가. 주역은 천이라는 블랙박스에 점치는 자의 양자택일식 질문에 대한 답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점괘의 해석은 내 마음을 돌이켜 흉함과 후회를 줄이거나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해준다. 하지만 나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길흉은 사회 속에서 발생되는 것이기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해서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주역공부는 자칫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인식되거나 염세주의로 흐를 개연성이 높다. 주역에 달통한 도인들이 세속을 피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기인된 한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점괘의 해석은 결국 점사를 묻는 자의 학식과 덕에 달려 있다. 그래서 주역은 세심경洗心經 또는 군자학이라고 불리어진다. 주역의 점을 잘 해석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행적을 많이 알아야多識傳言往行한다고 말한다. 이는 어떤 물음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역의 점에 능통하려면 폭넓은 공부가 병행되어야 한다. 주역본의를 저술한 주자도 그가 살던 시대의 철학적,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여 각종 집주와 주역본의를 저술하여 후학들에게 길을 안내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의 주역공부도 심리학이나 뇌과학 등의 다양한 학제와의 연계를 바탕으로 보다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반면 심성心性의 수행적인 측면에서는 상과 괘·효사·爻辭의 체득을 통해서 욕심을 씻어내고洗心, 마침내 천하의 연고를 통한다感而遂通天下之故는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주역에서 점을 치는 궁극적인 의미는, 군자가 되고, 더 나아가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6. 홍범과 하도낙서와의 관계

 

어떤 역학자는 홍범에서 말하는 오행이 물질차원의 오행으로 상생상극이 빠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서 홍범편을 전국시대의 창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의리역 학자들은 오늘의 주역이 점집의 상품으로 전락한 배경에는, 오행을 받아들여 술수역術數易으로 전락한 데 있다고 보고 오행체계를 주역에서 분리시킬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홍범과 주역, 즉 음양과 오행을 결합시킨 역의 당위성과 독창성은 무엇일까.

 

최초로 오행을 언급한 홍범과 음양을 말하는 계사전의 하도, 낙서는 어떠한 연관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낙서는 하도에서 금과 화를 바꾸고金火交易, 우측으로 회전하면 만들어지므로 이 둘의 관계를 분리된 상생상극이라 한다. 하도와 낙서의 분리성이 아닌 상생과 상극의 조화를 통한. 즉 하도와 낙서를 종합한 하락총백도와 같은 역도易圖도 있다. 새로운 역해석의 틀이 열렸는지 알 수 없지만 하도와 낙서, 복희8괘와 문왕8괘의 관계를 고려한 새로운 8괘 모형이 필요하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다. 정역에서는 정역팔괘를 만들어 역의 해석을 하고 있다. 다가올 시대의 역의 해석을 위해서 설괘전에서 제시하는 문왕팔괘와 복희8괘를 넘어서는 새로운 8괘가 만들어지게 될 것인가.

 

 

7. 8괘와 64괘를 복희씨가 만들었다면 과연 복희씨 성인의 창작물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의 위대한 업적과 발견은 그 시대의 지식과 지혜의 종합적인 상호작용의 토대 위에서 나온 결과다. 8괘가 나올 수 있는 인식적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과연 복희씨만의 8괘가 가능할까. 8괘가 태극-음양-사상-8-64괘로 전환되는 고도의 사유체계의 바탕 위에서 나왔다고 추정한다면, 문자가 없던 시기의 복희씨는 어떻게 그러한 사유가 가능했을까.

 

주역해석의 가장 기본 틀인 팔괘로 복희8괘와 문왕8괘가 있다. 8괘 각각의 괘·상의 배속에 대해 설괘전에서 제시하고 있지만, 점괘 해석의 일반화된 관점으로 연관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형상을 보고 팔괘에 대비시켰는지, 아니면 팔괘의 괘상에 맞추어 사물을 대비시켰는지조차 애매한 점이 많다. 팔괘가 독립된 원소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변통하는 관계이다 보니 학인마다 얼마든지 달리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8괘의 괘·상을 취하는 과정은 먼저 복희8괘의 대대관계의 관점에서 보고, 다시 기운의 유행관계를 고려하여 문왕8괘와 연관시켜 해석한다. 팔괘의 각 상마다 이러한 관점으로 분류되어야 하지만 학인들마다 비약과 견강부회식 해석이 많아 논리적인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분별이 아닌 체득의 경지에서 8괘 취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방법이 주역을 공부하는 초학자들에겐 합리적이 아닐 수 있기에 불편할 따름이다.

64괘에 대해 계사전에서는 팔괘가 열을 이루니 상이 그 속에 있고, 거듭해서 중첩하니 효가 그 속에 있다八卦成 象在其中矣 因而重之 爻在其中矣라고 기술하고 있다. 문왕이 복희 8괘의 바탕 위에 거듭하여 64괘와 괘사를 만들고 주공이 효사를 지었다는 과정은 복희와 문왕간의 시대간 간극이 너무 커서 타당성을 주장하기엔 석연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8괘에서 64괘로 가는 과정은 수리적으로 일정팔회법一貞八回法에 의해 논리적으로 분명하다. 반면 주역의 착종과 배합방식에 의한 통행본 서술체계(--기제-미제)는 왜 그렇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기록이 없다. 더더욱 주역 괘의 구성 순서가 일정팔회법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8. 점괘는 과연 하늘의 상天垂象을 나타내 주는 것인가?

 

주역의 점괘가 왜 맞는지를 궁구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신명계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히 비밀의 문 안에 감추어질 수밖에 없다.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과 강태공이 점을 친 고사를 통해 점괘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점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이 점의 결과에만 매달린다면 또 다른 무지의 신에게 복종하는 일이 된다. 주나라의 탄생시기에도 강태공은 점괘를 부정하고 오히려 행위의 대의명분을 중요시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이끌었다. 주역 점사의 해석도 사유의 합리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주 무왕이 강태공과 함께 은의 주왕을 칠 때 점괘와 취한 행동은 다음과 같다.

1) 출병하기 전 점괘 : 거북의 등껍질과 톱풀을 사용하여 친 첫 번째 점괘는 대흉, 두 번째는 더욱 흉하였다. 이에 강태공은 점쳤던 도구들을 쓸어버리고 거북의 등껍질과 톱풀은 말라빠진 뼈다귀와 죽은 풀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들이 어떻게 길흉을 예측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즉시 출병을 주장한다.

2) 국문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휘몰아친 큰 바람이 군기의 깃대를 꺾어버린다. 이런 불길한 조짐을 주 무왕은 오히려 하늘이 병사를 내린다는 말天落兵이니 하늘이 주나라를 돕는다고 해석하고 군대를 이끈다.

3) 목적지에 도착하여 다시 무당에게 점을 치라고 하나 거북의 등껍질을 구울 불조차 꺼져버린다. 무왕은 이것은 하늘의 뜻으로 불이 꺼진 것은 은나라가 반드시 멸망할 것임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다시는 점을 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주위를 안심시킨다.

4) 목야의 전투에서 은나라를 멸망시킨다.

 

 

 

9. 주역의 지향점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중국 한나라의 주역이 들어와서 주류를 이루다가 고려 말에 비로소 송나라의 의리역義理易이 들어오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역은 선비들이 공부하는 경전 중 가장 어려우면서도 한번은 깊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조선후기에 접어들어 현실의 암담함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 재인才人들이, 후천의 세계를 꿈꾸며 심혈을 바쳐 주역을 공부하여 명맥을 이어오게 하였다. 요즈음에는 젊은세대가 주역을 배우려하지 않는다. 기껏 주역공부는, 한의과 학생들이 한의학의 이해를 위한 징검다리 공부라고 인식할 정도의 수준이다. 주역과 그다지 관련이 없는 명리나 풍수와 연관하여 접점을 찾는 정도다. 변화의 학문이면서 천지를 두루 감싸는 주역이 오히려 시대의 변화에 밀려 미로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주역은 대상을 모순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현상을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는 변화과정 속에서 상생과 상성相成의 상호관계로 이해하는 학문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개체성이 강화되고 관계 속에서 심리적으로 갈등구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모순과 통일이라는, 즉 대상과의 유기적 관계를 추구하는 주역의 열린 사고는 여전히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주역공부의 장점은 상징성의 해독으로부터 얻게 되는 사물의 해석능력과 사물을 보는 다양한 관점을 익힐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해 일에 대한 경중과 행동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개인들은 복잡다단한 삶속에서 변화의 기준을 세워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의 주역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젊은이들의 욕구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주역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주역의 전달체계와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깊이 있고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주역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부여를 젊은이들의 고민에서 찾아야 한다. 나아가 주역공부가 현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체화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주역이 가진 특수성과 보편성 중에서 보편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다. 주역이 살아있는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경문과 주역공부의 안내서인 계사전, 설괘전 등을 철학적 사유체계로 알기 쉽게 풀이하여야 한다. 현실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체계를 뽑아서 말해주는 한편, 과학을 포함한 타 학문들이 가진 각각의 논리와 주역의 논리가 접촉될 수 있어야 한다. 경문을 읽다보면 과거와 현대의 생활양식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어쩔 수 없이 점사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특수성 등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는 주역해석의 대중화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므로, 현대인의 감성에 맞는 표현방식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 한의학, 풍수, 명리학, 건축, 다도, 병법 등 문화생활 전반과 연결되어 있던 주역의 원리들이 실생활은 물론 현대 학문과의 연계선 상에서 새롭게 부각되어야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할 때 주역은 살아있는 학문으로서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전승될 수 있을 것이다.

 

수천년 동안 주역에 알게 모르게 입혀진 신비의 옷을 벗겨야 한다. 주역을 달통하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믿음도 배격해야 한다. 오히려 주역공부로 이룰 수 있는 부분과 이룰 수 없는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서 접근해가야 한다. 그럴 때 주역은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고뇌를 해결하는 단서를 보여 줄 것이다.

 

 

10. 주역의 수양론

 

주역과 관련된 수양론은 내적으로는 강건하고 외적으로는 쉼 없이 나아간다自彊不息는 말로써 압축될 수 있다. 복희, 문왕, 주공() - 공자() - ·진시대() - 한나라() - 송나라() - ·청으로 이어지는 역학의 사상흐름에서 북송시대의 주자와 장재에 의해서 역학해석의 큰 흐름이 나누어졌다. 역에 대한 주자의 이기를 통한 해석과 장재의 기일원적 해석이 그것이다.

 

주역경문의 해석에서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 몸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일원론적 체계에서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본다. 몸을 떠나서는 마음의 성리性理를 제대로 정립할 수 없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본심을 지키는存心 것을 말하고, 간괘艮卦에서는 그 등에서 그침艮其背를 이야기 한다. 어디에 존심을 하고 어떻게 마음을 그치게 할 것인가. 단전에 존심을 하면 선도수련으로 연결된다. 주역과 선도수련은 중국 위진·시대 위백량에 의해 주역참동계라는 저술이 나온 이후,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주역이 제시하는 귀의처는 결국 마음을 씻고, 무사·무위의 경지에서 사물과의 만남에서 오는 경계를 무심히 받아들이는 수양론에 있다. 일상에서 주역 괘효사를 보는 관공부를 통해 마음의 때를 하나씩 벗겨나감으로써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정한 심리를 회복한 수 있을 것이다.

 

심신의 조화를 말하는 주역은 현대과학에서 밝혀낸 인체원리, 한의학의 구성원리 등과 접목되면 새로운 의학체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수양론으로서 주역적 원리는 심신의 조화가 필요한 현대사회에서 아프기 전에 병의 원인을 미리 다스리는 양생의 지혜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1. 주역에서 나오는 등장인물과 수양론

 

주역에는 군자, 성인, 대인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외에도 제, 선왕, , , 소인, 이주卦 九四爻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그 정확한 개념과 의미가 밝혀져야 한다. 주역은 수양을 통한 군자학이라고 볼 수 있다. 소인이 역을 공부한다고 대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타고난 재질을 주역 공부를 통해 바꿀 수 있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수양론으로서 의미 있는 가치를 가지려면 수행의 단계마다 도달할 수 있는 과위果位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성문사과와 보살, 부처 등 수련의 단계마다 도달하는 위가 있다. 주역에서도 그와 같은 단계를 밝힐 수 있어야 수양론으로서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2. 주역의 논리구성과 전달

 

주역은 상과 수로서 나타내고, 진리는 점자와 독자에게 맡겨놓고 스스로 깊이 음미하고 사유하게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육효의 변화를 궁구하고 효에 붙은 말을 숙독하는 과정에서 점점 분별하는 마음의 때를 벗기는 경지로 들어간다. 침잠하여 사색하는 가운데 새롭게 터득하는 기쁨을 얻게 된다.

주역의 해석논리는 상당히 어렵다. 주역해석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도 단점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혹자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논리라고도 한다. 사실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나 모호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설의 논리체계를 갖고 있는 주역은 다양한 관점으로 복잡한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함의가 크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음과 양,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서로 갈마들며 변하고 있고 그 중간에 기라는 중간자가 끼어있는 삼중구조로 구성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인과성에 기초한 단일성의 논리만으로는 현상을 완전히 해석할 수 없고, 모호성만이 전부라고 하면서 인과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단순성과 모호성의 양 논리를 종합할 수 있어야 새로운 역의 해석체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주역풀이는 서당書堂시대를 살아온 학인들에 의해 한문경전이 한글화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행해졌다. 단어에 대한 정확한 뜻풀이 없이, 상징성과 모호성을 그대로 둔 채 번역되다 보니 의미의 정확한 전달측면이 어려웠다. 주역의 한글화 작업은 정신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주역해석의 일관된 틀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효변, 호괘, 착종, 납갑, 추이 등 많은 방법이 있다. 이런 방법들이 어떤 괘에 대해서는 부합하지만 다른 괘에 적용하면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인들이 일관된 방법에 의해 해석하지 않고 괘·효사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적용하다 보니 주역해석의 한계가 드러났다. 현재까지 주역해석의 유용한 해석의 방법으로, 괘의 순서와 이름과 뜻, ·외괘의 이름과 뜻, 내괘와 외괘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살피고, 육위六位로 나누어서 강유剛柔, 음양陰陽, 왕래往來, 주효主爻, ··, (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 의한 괘의 해석이 64괘 전체 효에 대해 체계적으로 적용되어 해석되지 않고 있다. 학자에 따라 의리에 치중하거나 상수적인 관점에서 풀이하거나, 또는 둘을 절충하여 해석하여 왔다.

수많은 학자들의 해석방법 중에서도 송대의 정자와 주자에 의한 주역전의는 상수보다는 의리에 치우쳐 해석하고 있고, 또한 도덕적 관점을 견지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주역 해석의 폭, 64괘의 전체적인 회통, 문장의 유려함을 지녔다는 점에서 주역공부의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13. 선후천의 문제

 

주역 건괘 문언전에 하늘보다 먼저 해도 하늘을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하늘의 때를 봉행한다先天而天弗違, 後天而奉天時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선천과 후천이란 말이 나타난다. 소강절은 복희역을 선천역, 문왕역을 후천역이라고 하면서 현재의 세계는 후천이고, 그 이전의 세계는 선천이라고 보았다. 후천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냐에 대해 학인들마다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다. 후천의 시점이 왜 중요하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후천이 오면 천지도수가 바뀌어 지축이 다시 선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선후천 교역시점을 동북아라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보아, 우리나라의 공화국 성립과 같은 큰 사건을 계기로 후천이 열렸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주역은 천지를 다 아우르는 도이므로 주역의 도를 깨우치면 천지자연의 변화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너무 중국이나 한국 중심의 시야에 갇혀 선후천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세계의 운명을 바꾼 사건은 너무나 많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특정한 시점을 중심으로 선후천 교역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견강부회식 해석으로 비춰질 수 있다.

 

피흉추길이 내 마음속에 있다면 선후천의 개념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남녀의 위상변화를 따져서 선후천이 왔다고 하면 지금의 힌두권과 회교권의 여성권리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후천이 온다고 할 때 종교 간의 화해도 동양권의 유불선 회통만이 아닌 가장 큰 종교세력을 가지고 있는 회교, 기독교를 모두 포함한 회통이어야 한다. 사실 동양에서, 유불선은 겉으로는 갈등적인 양상을 보이면서도 안으로는 태극의 원리처럼 상호교류와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보완적 기능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선후천은 천도의 변화에 의한 외부 요인에 의한 결과라고 보기보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상황에 대한 마음의 문제로 해석해 보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점괘의 해석은 내 마음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의식의 확장에 의한 관점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현상을 기준으로 선후천을 고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해석의 다툼이 클 수밖에 없다.

 

 

14. 역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주역 공부의 목적이 미래를 알기 위해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면 주역을 공부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주역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깨끗하고 정밀하고 자세하다고 할 수 있다. 주역을 공부함으로써 외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일의 조짐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계발되게 된다. 일이 다가옴에 바로 사물의 시작과 끝을 그려볼 수 있기에 처신함에 적합한 때에 자기의 중심을 지키면서 대응할 수 있다. 그러기에 굳이 일마다 점을 치지 않더라도 평소에 주역의 괘사와 효사를 읽다보면 특정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는 모의(simulation)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주역은 일종의 삶의 지침서이며, 주역공부는 인생의 폭과 깊이를 넓고 깊게 만들어 준다. 주역 경전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이치는 결국 삶에 대한 나아감과 물러남, 그침과 머무름의 바른 때를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5. 주역공부의 여정

 

모든 공부는 몸의 수행을 떠나서는 관념론에 빠지기 쉽다. 주역공부도 효사와 괘사의 의미만을 음미하고 유추하다 보면 자칫 관념론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반적인 경서공부와는 달리 거듭해서 보아도 질리지 않으며, 게다가 공부한 만큼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고 폭이 넓어지는 특별한 맛은 분명히 있다.

64괘의 괘사와 효사는 원전은 물론 한글로 읽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어떤 학자는 주역해석에 있어 주역경문으로 주역 자체를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런 해석방법은 경문의 다의성, 은유성과 간결성, 이천년 전의 한자와 지금 한자와의 괴리에서 오는 언어적 단절이 근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칫 독단적이며 고립된 경향으로 빠질 우려가 있다.

 

몇 천 년 동안 많은 학인들이 주역을 공부하여 자기만의 일가를 이루어 많은 저서를 남겼다. 주역의 책들은 갖가지 꽃의 무리와 같다. 저마다의 견지를 주장하며 주역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펼쳐 보인다. 처음 주역 공부를 시작할 때에 주역이라는 산이 얼마나 넓고 높은지 가늠이 되지 않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이 책 저 책을 읽었다. 십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몇 번을 읽고 들어도 주역공부는 체계가 잡히지 않은 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정도로 앞길은 희미할 뿐이었다. 아는 것도 아니고 아주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정작 무엇을 공부했다는 흔적도 뚜렷이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그만두기에는 그동안 들인 노력이 아까워 포기하기에는 미련이 남았다. 허허한 마음을 달래고자 이런저런 강의만 기웃거리는 시간만 계속되었다.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니 상수와 의리 전반에 걸쳐 전체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는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 내 공부의 중심으로 삼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그동안 주역공부를 위해 많은 종류의 책을 개략적으로 읽어 보았다. 학계 쪽에서 나온 책은 상대적으로 논리적이지만 깊이가 없어 맛이 없다. 반면 재야 쪽에서 나온 책은 하나로써 꿰뚫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정신으로 회통하게 썼지만, 한글로 전달하는 수준이 미흡하여 표현의 한계를 드러냈다.

 

나의 관점에서 주역에 관한 책 중에서 주역전의는 주역을 가장 체계적이며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는 책이다. 의리와 상수를 다 같이 고려하며, 일관성 있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학인들은 한번은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주역을 공부한다는 학인들 중에서 원전으로 된 주역전의를 혼자서 제대로 한 번 완독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주역공부를 시작할 때 경문과 함께 처음부터 주역전의를 정독해서 공부의 중심을 잡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문공부에 따른 부담감으로 힘들 수도 있겠지만, 느리게 가는 것이 빨리 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공부의 중심을 잡은 다음 다른 책들을 비교·참고하면서 공부해 나갔으면 주역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도 깊어졌을 것 같다. 최근에 만난 학역필담은 주역의 접점을 근대로 확대하고 주역해석의 깊이를 깊게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책이다.

 

주역공부는 지름길이 없다. 끈기와 호기심, 가볍지 않음이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주역은 진득하게 파고들지 않으면 숨겨져 있는 깊은 뜻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것 같다. 오솔길을 찾지 말고 곧장 큰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주역은 산과 같다. 워낙 크고 깊은 산이라 접근마저 가볍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씩 묻고 들으면서 길을 가야 한다. 하나의 산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그만큼의 경치를 보여주기에 계속 더 높은 산봉우리로 올라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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