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란 말이 갈대처럼 뇌리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미증유의 코로나 역병이 휩쓸면서 가장 효과가 있는 예방법 중의 하나가 거리두기이다.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행한 것이겠지만 거리두기를 하는 만큼 마음의 거리도 늘어났다. 모든 사물 사이에는 거리가 놓여있다. 거리에 따라 서로 주고받는 힘이 다르듯이 거리는 세상이 존재하는 한 있을 수밖에 없다. 고전물리학의 만유인력 법칙에 따르면 물체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사물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이 법칙이 엇비슷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인간관계에서는 서로의 거리에 따라 가깝고 먼 마음의 상태가 정해진다. 마음의 거리에는 처세에 따른 권력의 거리, 남녀 사이 애정의 거리, 친구 사이 우정의 거리, 가족 간의 애증의 거리 등 다양한 유형의 거리가 있다. 사람 사이의 인연은 서로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현악기의 줄들이 적당한 거리에서 조율되어야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듯,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하는 힘으로 다양한 삶의 무늬가 짜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마다 살아오면서 서로의 가깝고 먼 심리적 거리를 재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이는 다차원방정식과 같다. 거기에는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식을 풀어 살맛 나는 인생길을 가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까지 고려된 많은 요소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저 사람이 저럴 리가 없는데 실망하거나 애꿎게 그 사람의 인격을 탓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프리즘으로 바라보기에 세상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 상식적인 바탕 위에서 굴러간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많은 어긋남은 서로의 거리를 재는 방정식의 변수들, 즉 의리와 이해에 대한 가중치 배분이 서로 달라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그 사람의 본심을 읽게 되는 일이 있다. 평소 살갑다고 느낀 사람한테서 서운한 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내가 많이 주어 기대했는데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즉 바라보는 기대치가 서로 다른 것이다. 이처럼 거리를 재는 방식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아니 앞으로 살아갈 인생까지 통째로 담겨있는 듯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주관적 감정에 휘둘려 쩔쩔매기보다 객관적으로 거리의 척도를 재는 방식을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관계에 얽히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은 타인의 마음 씀씀이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거리 척도법'을 만드는 일이다.

사람 사이 거리의 척도를 알면 그 사람의 뒷모습을 읽을 수 있다.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가지만 그럴수록 누군가와의 거리의 설정은 더욱 중요해진다. 가까운 인연을 잃지 않도록 서운해하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찾아야 한다. 거리의 척도법에는 한 사람의 가치관이 녹아 있겠지만 세월 따라 변해간다. 그러므로 인생의 단계마다 척도법도 걸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유튜브, 컴퓨터 운영체제, 카카오톡 등 수시로 업데이트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뜬다. 세상의 속도가 그만큼 빨라지고 불확실성이 많다는 징표이다. 마찬가지로 복잡한 인생의 단계에서도 인간관계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왕이면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쪽으로 업데이트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을 욕계라고 한다. 욕망이나 욕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비유한 말일 테다. 우리 마음 곳곳에 희망이란 이름으로 너절너절 붙어 있는 욕심을 줄여보면 어떨까. 욕망이란 끝이 없기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포스 왕의 바위'처럼 이룰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맹자 진심편'에 '마음 수양은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말이 있다. 욕심의 크기를 줄일수록 사람 관계에서 기대하는 거리는 적당한 거리로 조율되어 좀 더 조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로 멀어진 공간적 거리가 다시 숨소리가 들리는 일상의 거리로 회복되었으면. 세대·성별·이념의 갈등으로 우리 사이에 크레바스처럼 벌어진 심리적 거리가 다시 대화 가능한 거리로 돌아갔으면. 거리의 척도법을 업데이트하여 함께 살고 싶은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중도일보 풍경소리에 기고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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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이 인생을 살면서 얻은 다섯 가지 경지(老境)

 

形役

마음이 육체의 부림을 당하지 않도록 하고,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경우라도 마음에 담지 않는다.

 

今是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현실을 직시한다.

 

息交

인연에 묶이지 않도록 가급적 사람 사이의 교제를 줄인다.

 

耘耔

농사를 지으며 풀뿌리를 만지는 적당한 노동을 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꾼다.

 

樂天

무엇을 바라지 않고 자기에게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인생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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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에서 만난 겨울의 동해는 온통 차디찰 정도의 흰빛의 일렁거림이었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 따라 파도는 집채만한 크기로 하얀 너울을 쉼 없이 퍼트리고 있었다. 포말과 함께 물보라는 먹이 사냥을 마친 사자가 거친 숨을 뱉어내듯 헉헉거렸다. 파도는 무법자라도 된 듯 모든 소리를 삼키고 있었다.

파도가 포말이 되어 산산이 부서지듯이 인생도 언젠가는 부서져 흩어져야 한다. 부서져야 다음의 파도가 또 와서 부서지면서 바다는 약동하는 존재로 생생하는 것이다. 인생은 파도가 물 위에 순간 일렁거린 것처럼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일 뿐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뭐라고 말할 것인가. 잠시 파도처럼 물 위에 부유하는 삶에 지나지 않는 존재인걸.

새해다.

무슨 거창한 말이 필요하겠는가. 노자의 實其腹 强其骨이란 말처럼 살아있는 몸에 관심을 기울이는 해가 되었으면.

임인년 인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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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선으로 그리는 날갯짓


유교·불교·선(仙)은 각각 동아시아의 유구한 문명의 바탕이었다. 유·불·선 3교는 한 시대를 지
배하는 주도적인 사상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 겉으로는 대립하는 모습이었지만 안으로는 끊임
없이 상호교류하면서 동아시아 문명을 이루어 왔다. 겉으로는 유교가 이끄는 것 같았지만, 노
자를 종교화한 도교와 동아시아로 건너와 현지화에 성공한 불교가 백성의 마음속에 깊숙이 뿌
리를 내렸다. 한자라는 문자 특성상 한자를 언어로 쓰고 있는 사회는 높은 문맹률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러기에 글자를 모르는 백성의 애환을 잘 어루만질 수 있는 쪽은 불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
다. 노자를 추존하는 신선神仙사상은 기공이나 한의학같이 일상 속에 쉽게 행할 수 있는 몸 
수련법으로 백성에게 다가갔다. 유교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로서 잘 작동되었다. 백성은 물이
고 군주는 물에 떠다니는 배와 같다고 했지만, 실제 그들이 다스리는 세상은 그들의 주장과 
달랐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언어를 독점하여 지배했고 그들의 위세에 백성은 잡초처럼 살 수
밖에 없었다. 각기 다른 지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불선의 융합은 동아시아의 독특한 문화 전통에서만 나
올 수 있는 사상의 흐름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역설적으로 유불선 융합은 중국 송나라 유학
자인 주자에게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유교에 불교의 마음을 
입혀 성리(性理)라는 학문으로 탈바꿈을 거쳐 주자학을 세웠다. 이런 경향은 중국 명나라 시대
에 더욱 두드러졌다. 불교의 고승들이 사서四書나 주역, 노자를 풀이했고 도교와 불교는 수련
법의 새로운 경지를 서로 넘나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사상적 혼란이 심한 조선말에 서양 문명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한민족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의 해석을 통해 유불선 3교를 융합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러나 동학
東學처럼 제대로 싹이 나기도 전에 서양의 물질문명과 기독교 문명에 시들어버렸다. 유불선의 
융합은 지금에는 박제화되어 겨우 뒷골목 헌책방에서나 찾을 수 있는 지적 전통의 한 파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유불선 중 불교는 그나마 세계화의 길을 소박하게나마 걸어가고 있지만 유교와 도교(仙)는 그 
존재가치가 희미해졌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드러나고 있는 물질문명과 조작되는 
대중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로 유불선 융합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실 유불선이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잘 
모른다. 건국 이후 급속도로 기독교화된 우리나라이기에 더욱더 그럴 것이다. 인터넷에서 유불선을 검색하면 너무 신비로 포장하려고 하여 평범한 도를 잃은 측면이 많은 
듯하다. 유불선 융합이 가진 가장 큰 의미는 자기 자신의 수양을 통해서 삶과 죽음의 세계까
지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다. 유학은 자신의 내적 수양을 통해 평천하, 즉 인간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노자로 대표되는 선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 자연계와 아울러 보이
지 않는 경지까지 나아갔지만, 수양에 따른 과위(果位)를 제시하는 데 부족한 모습이다. 불학
(佛學)은 자신을 닦아 죽음을 넘어선 경지까지 아우르는 도를 열었지만, 현실의 벽을 초월하는 
데에 빠지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합리성에 기반을 둔 유교, 나와 자연이 하나의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선, 생사를 벗어난 초월성에 닿아 있는 불교, 이들의 융합은 새로운 가치관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려만 한갓 어리석은 자의 넋두리에 불과한 생각에 지나지 않을지
도. 공자와 노자에 기반을 둔 유교와 도교는 동아시아 사상사의 시원이지만 인류사의 위대한 횃불
인 불교와 줄기차게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문명의 씨를 잉태하려는 몸짓을 이어왔다. 언제쯤 
싹을 틔워 꽃피울 수 있을지. 격변의 시대다. 암호화폐, 유전자 혁명,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 양자 컴퓨터, 인공지능, 메타
버스와 같이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변화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게다가 서서
히 발톱을 드러내는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할 듯하다, 새롭
게 펼쳐질 세상에는 새로운 문명의 틀이 필요할 텐데 우리는 준비하고 있기나 한 것인지. 그
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입으로 맛보는 오감을 만족하는데 정신을 빼앗긴 채 이 세상을 
마감하는 것은 아닐는지. 몸의 감각에 탐닉하는 현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한 지점에 이른 듯하다. 유불선
의 융합이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상공간에 작은 날갯짓을 해 본다

14.42 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曰 有心哉 擊磬乎 旣而 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子曰 果哉 未之難矣

 

14.42.1 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曰 有心哉 擊磬乎

공자가 위나라에서 경쇠를 치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집을 지나가는 자가 말하기를 천하에 마음을 두고 있구나. 경쇠를 침이여.

 

磬 樂器. 荷 擔也 蕢 草器也. 此荷蕢者 亦隱士也. 聖人之心 未嘗忘天下 此人 聞其磬聲而知之 則亦非常人矣

 

은 악기이다. ‘메다이고 궤삼태기이다. 이 삼태기를 맨 사람 또한 은자이다. 성인의 마음은 일찍이 천하를 잊은 적이 없었는데, 이 사람은 경쇠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아니 또한 비상한 사람이다.

 

[기타사항]

공자는 29세 때 노나라 악사 사양자師襄子에게서 거문고를 배웠고, 34세에는 낙양에 가서 장홍萇弘에게 왕실음악을 배웠으며, 36세에 제나라에서 순임금의 소를 듣고 심취하였다.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뜻밖에 마주친 재앙과 고난을 겪는 동안에도 음악을 연주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다음 아와 송이 제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14.42.2 旣而 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이윽고 말하기를 비루하구나, 확고하구나.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만둘 뿐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벗어 물을 건너고, 얕으면 바지를 걷어 올려 물을 건넌다.

 

硜硜 石聲 亦專確之意. 以衣涉水曰厲 攝衣涉水曰揭. 此兩句 衛風匏有苦葉之詩也 譏孔子人不知己而不止 不能適淺深之宜

 

경경硜硜돌소리이고 또한 오로지 확고한 뜻이다. 옷을 벗고 이윽고 물을 건너는 것을 라 하고 옷을 올리고서 물을 건너는 것을 라 한다. 이 두 개의 구절은 <시경 위풍 과유고엽>의 시인데, 공자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데도 그만두지 않으므로 깊고 얕음의 마땅함을 따라지 않음을 비웃는 것이다.

 

14.42.3 子曰 果哉 末之難矣

자왈 과감하구나, 그 사람을 나무랄 수가 없구나.

 

果哉 嘆其果於忘世也. 末 無也. 聖人 心同天地 視天下猶一家 中國猶一人 不能一日忘也. 故 聞荷蕢之言 而嘆其果於忘世. 且言 人之出處 若但如此 則亦無所難矣

 

과재果哉 그가 세상을 잊는 것에 과감함을 탄식한 것이다. ‘없다이다. 성인은 마음이 천지와 같아서 천하를 한 집안으로, 중국을 한 사람의 나라로 여겨서 하루라도 잊는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삼태기를 맨 사람의 말을 듣고는 그가 세상을 잊음에 과감한 것을 탄식한 것이다. 또 사람이 나아감에 그렇게만 한다면 어려움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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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 子貢 問曰 何如 斯可謂之士矣 子曰 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可謂士矣 曰 敢問其次 曰 宗族 稱孝焉 鄕黨 稱弟焉 曰 敢問其次 曰 言必信 行必果 硜硜然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 曰 今之從政者 何如 子曰 噫 斗筲之人 何足算也

 

20.1 子貢 問曰 何如 斯可謂之士矣 子曰 行己有恥 使於四方 不辱君命 可謂士矣

자공이 여쭈었다. 어떻게 하여야 선비라 말할 수 있습니까. 자왈 처신함에 염치가 있고 사방의 나라에 사신을 가서는 군주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아야 선비라 일컬어질 만하다.

 

20.2 曰 敢問其次 曰 宗族 稱孝焉 鄕黨 稱弟焉

(자공이) 감히 그 다음을 여쭙자 말하기를 친척들이 효성스럽다고 하며, 마을의 사람들이 공손하다고 하는 것이다.

 

20.3 曰 敢問其次 曰 言必信 行必果 硜硜然小人哉 抑亦可以爲次矣

(자공이) 그 다음에 대해 여쭙자 (공자가) 말하기를 말하면 반드시 신의가 있고, 행동하면 결실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융통성 없는 소인이지만, 또한 다음은 될 수 있다.

 

20.4 曰 今之從政者 何如 子曰 噫 斗筲之人 何足算也

(자공이) 여쭙기를 오늘날 정치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자왈 아아!, 밥줄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을 따지고 할 만한 게 무엇이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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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子適衛 冉有僕 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

 

9.1 子適衛 冉有僕

공자가 위나라로 갔는데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僕 御車也

 

마차를 어거하다이다.

 

9.2 子曰 庶矣哉

자왈 많구나.

 

庶 衆也

 

많다이다.

 

9.3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염유가 여쭈었다. 이미 많아졌으면 무엇을 더하여야 합니까. 말하기를 그들을 부유하게 해주어야 한다.

 

庶而不富 則民生不遂. 故 制田里 薄賦斂以富之

 

백성들의 수가 많은데 부유하지 않다면 백성의 생활은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토지와 마을을 정비하고 세금부과를 적게 해서 그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9.4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

여쭙기를 이미 부유하다면 또한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 말하기를 가르쳐야 한다.

 

富而不敎 則近於禽獸. 故 必立學校 明禮義以敎之

o 胡氏曰 天生斯民 立之司牧 而寄以三事. 然 自三代之後 能擧此職者 百無一二. 漢之文明 唐之太宗 亦云庶且富矣 西京之敎 無聞焉. 明帝 尊師重傅 臨雍拜老 宗戚子弟 莫不受學 唐太宗 大召名儒 增廣生員 敎亦至矣 然而未知所以敎也. 三代之敎 天子公卿 躬行於上 言行政事 皆可師法 彼二君者 其能然乎

 

부유한데 가르치지 않는다면 금수에 가깝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학교를 세워 예의를 밝혀서 가르쳐야 한다.

o. 호씨가 말했다. 하늘이 백성을 내고 임금을 세워서 세 가지 일을 맡겼다. 그러나 삼대 이후부터는 이 직책을 일으킨 자는 백 명 중에 한두 명도 없었다. 한나라의 문제와 명제, 당나라의 태종 정도가 또한 백성을 많게 하고 부유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서한의 가르침은 알려진 것이 없다. 명제는 스승을 높이고 사부를 존중하고 대학에 가서 삼노를 공경했고 종실의 친척과 자제들이 배움을 받지 않음이 없게 했으며, 당 태종은 이름난 신하를 크게 소집하고 생원을 증원하였으니 가르침이 또한 지극하였지만 가르치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 삼대의 가르침은 천자와 제후와 경대부가 위로부터 몸소 행해서 언행과 정치에 관한 일이 모두 스승의 법으로 삼을 만했으니, 저 두 명의 군주가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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