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쉼표
한라산의 하늘을 보다
늘 삶의 어딘가에서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인생살이에 답답한 뭔가가 알게 모르게 깊숙이 들어와 쌓여 있다는 증거다. 그럴 경우 나는 바다로 간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를 보면서 허전함을 달래는 편이다.
동해 바다는 거칠고 광활하다. 그곳으로 가면 나란 존재가 한없이 왜소해져 온갖 번뇌가 가볍게 느껴진다. 맺힌 감정을 거친 바다에 던져서 날려버릴 수 있다. 시원한 바다, 황량한 주변풍경, 비릿한 바다내음이 어우러져 사람간의 관계에서 생긴 고뇌를 날려버리기에 좋다. 남해나 서해는 그냥 보이는 모습만 다를 뿐이지 별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제주도는 특이하다. 지형부터가 육지와는 판이하게 다르고 바다가 주는 풍경도 독특하다. 이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이지 않고 속세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속세와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 준다. 묵은 번뇌를 감싸 안아주면서 묘하게 사라지게 만들어버린다.
제주도 바다는 한라산이 있기에 더욱 더 특별한 바다가 되었다. 제주도 바닷가에 서면 사람의 마음을 안아주고 보듬어 주면서 한라산의 너른 품으로 데리고 가서 백록담처럼 고요한 마음을 닮게 해 주는 듯하다.
몇 번이나 제주도에 갔지만 저 멀리서 우뚝 솟아 있는 한라산 백록담까지 올라가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느 해 겨울에 한 번 올라가려다가 눈 폭탄으로 등산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사라오름’까지 오른 정도로 만족하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었다. 제주도 여행은 보통 3일 내지 4일 정도로 짧은 편이다. 정상을 한 번 갔다 오면 다른 일정이 빠듯하기에 등산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름이 지나고 나자 갑자기 백록담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한라산의 ‘설문대할망’ 여신이 이제 올라와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처럼 느껴졌다.
몇 년 전 정상에 오르기 위해 기점으로 잡았던 성판악 코스로 출발점을 정했다. 주차장은 이미 진입불가로 약 200미터 떨어진 도로가에 주차를 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10시가 채 되지 않았다. 금잔디 휴게소까지 12시 30분까지 도착해야 정상으로 갈 수 있다는 커다란 안내판이 보였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에 쉬지도 않고 길을 재촉했다. 길은 샛길 없이 허용된 등산길로만 갈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굴거리나무가 제법 군락을 이루고 있고, 어느 순간, 주변은 온통 조리대 천지다. 도토리가 쉴 새 없이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저 도토리에도 제주의 바람, 태풍, 천둥이 들어가 앉아 저렇게 소리를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촉박하여 더 이상 주위에 눈길을 줄 틈도 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마침내 금잔디 휴게소에 들어섰다. 12시 37분이었다. 뜻밖에도 등산로를 지키고 있는 국립공원관리직원은 우리에게 올라갈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황당했다. 나는 자동차 속도도 허용되는 오차범위도 있고 항공시간도 승객의 사정에 의해 늦어질 수 있는데 7분 정도 늦은 것 가지고 입장을 시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항의를 했다. 직원은 1분이 늦어 못 간 사람도 있다고 하면서 조금씩 편의를 봐주면 끝이 없다고 더 단호하게 말을 했다. 통사정과 논리를 던져보지만 의외로 태도가 완고하다. 작전을 바꾸었다. 원칙과 입장을 수긍한다고 하면서 인간적으로 부탁을 해 본다. 나도 간간侃侃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더한 깐깐한 사람이다.
계속 말을 하면서 방법을 찾아보았다. 상대방이 우려하는 문제는 안전이었다. 같이 가는 일행을 책임지겠다는 말에, 순간 틈이 보이는 듯했다. 우선 뒤쪽에 앉아있는 등산객 중에서 정상까지 가고 싶어 하는 분이 몇 분이나 되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저 멀리서 우리 대화를 주시하고 있는 분들을 향해서 “정상가실 분은 이쪽으로 한 번 와보세요.”라고 소리쳤다. 직원은 마치 내가 보내주는 것 같다고 말을 하지만 나의 제안에 관심 있어 했다. 정상까지 가겠다는 사람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6인이었다.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갔다 오겠다고 하니 마침내 허락하면서 2시까지는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1시간 반 만에 정상까지 가야 하는데 꽤나 빠듯한 시간이었다.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에서 난이도가 높은 비탈길로 이어졌다. 한번 앉아서 쉬지도 못하고 올라가다 보니 정상을 목전에 두고서 기진맥진해졌다. 마침내 백록담과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정상에 올랐다.
순간 맑은 가을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하얀 뭉게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아래를 보니 키 작은 관목도 서서히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고, 엉겅퀴를 닮은 야생화도 지천에 피어 있었다. 백록담은 한 쪽 귀퉁이에만 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힘들게 도착한 우리를 포근히 감싸 안아 주는 듯했다. 저 멀리 너른 중산간지대가 보이고 그 밑으로 점점이 박혀 있는 인간세상, 그리고 바다가 에워싸고 있다. 한라산을 오른 걸 축하라도 하듯 하늘은 연신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으로 순간을 연출한다. 살갗에 닿는 바람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강하거나 약하지도 않은 게, 그냥 딱 좋은 바람이다. 선계가 따로 없다. 선계가 있다면 이런 모습을 보고 선계라고 하지 않을 까. 그냥 여기서 한없이 하늘과 산의 기운을 느끼면서 머물고 싶었지만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산하라는 독촉이 제주 바람처럼 거세다.
한라산은 밖에서 볼 때는 그냥 하나의 큰 산일 줄 알았는데 속으로 들어와서 보니 평원도 있고 엄청 많은 오름으로 구성된 거대한 산이었다. 올라갈 때는 시간의 압박감으로 몸의 상태를 몰랐는데 내려가자니 서서히 종아리 근육부터 당기기 시작했다. 내려가고 내려가도 끝이 없는 듯, 완만한 길로 이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풍경은 의외로 단조로운 모습일 뿐이다. 어느덧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성판악 입구에 다다랐다. 왕복 8시간 30분.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숙제를 푼 것 같았다.
정상을 바라보았다. 이제 한라산은 내게 먼 존재가 아니고 늘 가까이 있었던 산으로 다가왔다. 제주의 어느 곳에서 한라산을 보더라도 먼 산이 아닌 나의 산이 되어 있기에, 내 기억의 한 곳에서 선명하게 늘 있을 것같다. 한라산으로 인해 바닷바람은 제주의 바람이 되었고, 한라산은 바다가 있어 한라산이 되었다. 한라산은 너른 품으로 지친 나를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한라산에서 풍파에 매이지 않는 여유를 느꼈고, 한라산이 만들어놓은 바다에서 세파에 휩쓸리지 않는 지혜를 조금 얻은 것 같다. 이제 한라산은 모처럼 마음을 먹고 가는 산이 아니라 불쑥 찾아가도 어색하지 않는 친구 같은 산이 되었다.
살다보면 가끔 마음이 멍멍해지는 때도 있고, 삶의 무게로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도 있을 테다. 그럴 때 한라산 정상에서 마주했던 산바람, 넓은 품새,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를 떠올리며 인생의 쉼표를 찍고 싶다.
태백의 밤하늘
‘오만원’
냉면을 시키고 나서 메뉴표를 보았다. 10년 전쯤이었으니 냉면 한 그릇 가격은 당연히 오천원이겠지 생각했다. 얼핏 보니 동그라미가 하나 더 있는 듯해 보였다. 우리 모두의 눈빛은 설마라는 소리를 불러내는 듯했다. 잘못 쓴 숫자거니 생각하면서도 끝내 진위를 캐고 말겠다는 의지로 종업원을 불렀다. 오만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은 번개가 치고 난 다음 일어나는 천등소리처럼 요란스러웠다. 일순 식당을 나가야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들 얼굴에는 놀람과 당혹감이 베여있었다. 세상사를 헤쳐오면서 쌓아올려진 남자들의 자존심이 아니던가.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이기에 돈의 제약으로 안방마님들의 마음을 무겁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 냉면은 그때까지 먹어본 냉면 중에서 가장 비싼 냉면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기족간의 정을 이어주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세상사에 바빠 무심코 묵혀 놓은 형제간의 옛정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여름휴가를 작은형 내외와 함께 다닌 지도 거의 10년이 되었다. 태백은 거의 단골 휴가지다. 오래전 강원랜드에서 있었던 그 사건은 여름휴가 중에 늘 우리를 웃게 만드는 추억이 되어 있다.
올해도 강원랜드에서 묵었다. 사방에서 기상관측이 있고 나서 최대의 폭염이라고 아우성이지만 태백의 밤기운은 그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히 남음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 냉면 사건을 끄집어내 회상하고는 무더위로 무거워진 마음에서 빠져나와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듯 즐거워했다. 여름날 태백은 그냥 태백산 언저리에서 시원한 몇 줄기 바람만 마시고 떠나가도 위로가 되는 곳이다.
강원랜드 바로 인근에 만항재가 있다. 고산지대에만 피어나는 꽃들이 지천에 널려 있어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어지는 곳이다. 여기에 들어오면 인간살이로 더워진 마음을 사방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으로 저절로 식힐 수 있으니 정말로 속세를 떠난 천상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함백산과 태백산의 중간이라 함백산과 태백산을 모두 손으로 잡을 듯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차로 올라가는 고갯길 중에서 가장 높은 재이며 가리워지지 않은 하늘과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 있다.
늦은 밤 10시, 우리는 만항재에 돗자리를 폈다.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다 담지 못해 쏟아낼 듯 별들은 촘촘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하늘의 천문에서 별을 찾기 시작했다. 화성, 목성, 토성, 북두칠성과 북극성, 십자성, 카시오피아.
저 많은 별들 중에서 우리가 아는 별의 이름은 황당하게도 손가락 갯수를 넘지 못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계는 안드로메다 성운 옆에 있는 ‘우리 은하계’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별들의 이름을 아는 지식이 손가락 갯수를 넘는다고 해서 천문天文지식은 더 많아지지 않을 듯 했다. 아니 태백 밤하늘의 별은 지식의 확장이라는 인간의 노력이 기실 무지의 폭만 증명해 줄 것 같았다. 새삼 지식의 크기는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는 별 몇 개 세어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즐거웠고 마음은 넓은 하늘처럼 포근했다.
순간 저 먼 허공에서 유성 하나가 날더니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잠시 마음이 먹먹했다. 그렇다. 우리 삶도 잠깐 빛났다 사라지는 유성처럼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냥 지구라는 공간에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져 갈 뿐이다.
그러고 보니 오만원의 냉면도 기억 속에 숨어 있다가 살다가 외로움으로 힘들 때 유성처럼 떠올려질 터이다. 유성은 어릴 적 여름날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서 온 기족이 비집고 누워서 찾기 놀이를 할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별이었다. 그런 유성을 이제 도시의 하늘은 말할 것도 없고 어지간한 시골에서도 볼 수 없기에 까마득하게 그 존재를 잠시 망각했다. 아마 요즘 세대들은 유성이라는 이름을 모를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의 밝기와 세상도 변했다. 참으로 오랫만에 유성을 보았다. 유성은 세파에 찌들러진 마음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고 가족 간의 따뜻한 정으로 숨 쉬게 해주는 천상의 쉼표인 듯싶다.
셀 수 없이 많은 별과 유성을 볼 수 있는 만항재의 하늘은 보석과 같다. 행복이라는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해서 두고 두고 보고 싶다. 우린 내년에 또 저 밤하늘을 보러 오겠다는 기약을 불어오는 바람에 새기고 이미 어두움에 깊게 묻혀버린 만항재를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