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골방을 열며
추워서 추운 게 아니다. 겨울이 지나고 막 봄이 오기 시작할 무렵이면 애타게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더 춥게 느껴진다. 이미 마음이 겨울을 떠나 봄으로 달려가 있어 서둘러 겨울옷을 벗어버린 탓이다.
직장이라는 보호구역 안에서 천연기념물처럼 세월과 더불어 무성하게 가지를 뻗어 나가던 나에게도 겨울이 왔다. 그동안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들이었지만 쓸모없다는 이유로 힘없이 잘려 나가고 추억을 품고 자리를 비켜주어야만 하는 고목이 되었다. 이제 겨울의 차디찬 바람에 맨 몸으로 맞서 당당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시 맞이하게 될 새로운 봄에 잎도 피우고 꽃도 기약할 수 있을 테다.
머잖아 직장이라는 보호구역의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 가야할 길은 미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호기심과 막연한 불안감이 갈마들면서 마음이 점점 착잡해졌다.
지금 세상은 마치 안개로 감싸져 있는 듯, 어디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앞날이 불확실하게 보인다. 게다가 저성장, 고령화, 저출산이 퍼트리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쓰나미처럼 엄청난 기세로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백세 시대의 도래라는 새로운 문까지 열리게 되었다.
내 주변에 나와 엇비슷한 연배의 친구들이 사는 형편을 둘러보면 베이비붐 세대인 내가 한 직장에서 삼십년 이상이나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운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안도는 한때의 위안일 뿐이다. 나는 곧 마주하게 될 인생 2막의 출발에서 어떤 배를 타고 어떻게 항해할 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먹는 점심은 약간 한가한 시간대를 골라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가끔은 오고 가면서 주고받는 머쓱한 인사를 피하고자 나들이 삼아 바깥식당으로 나간다. 와동과 장동을 이어주는 계족산 한 자락인 재를 넘고 조그마한 하천을 건너서 논밭 길을 따라 식당으로 간다. 느릿하게 걸으면 30여 분 걸리는 거리다. 운동도 되면서 머리도 식힐 수 있고 덤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운치도 솔솔 느낄 수 있다. 사시사철 변하는 산과 들의 풍경을 보면서 예전에는 바쁘다고 지나쳐버렸던 자연의 속살과 내밀한 속삭임을 가져보기도 한다.
식당 가는 길 중간쯤 이름 모를 산언저리에 덕윤향원德潤鄕苑이라는 글자를 돌에다 음각으로 새긴 표지석이 있었다. 이 길을 오랫동안 다닌 동료에게 덕윤향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몇 종류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 동산이라고 했다. 그냥 덕윤이라는 이름을 붙인 농원이나 묘소인가 싶었다. 거의 일 년 동안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무심히 지나쳤다.
몇 년 전이다. 직장의 울타리를 벗어난 후 마주하게 될 두 번째 인생무대에서 무엇으로 보람을 찾을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인생이라는 길에서 만난 여러 인연들의 의미를 풀어내면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공부가 좋을 듯싶었다. 한자문화권에 있는 지적토양 위에서 문화적 소양과 인문학적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한문에 대한 기초적인 해독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부터 한문을 배우는 방법은 먼저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등을 익힌 다음 대학, 중용, 맹자, 논어로 이어지는 순서로 공부하였다고 한다. 사서 중 대학은 경문이 짧아서 접근하기 쉽다. 독송 파일을 스마트폰에 깔아서 한적한 길을 걸을 때면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음미했다. 그동안 아마 몇 백번은 들었을 성싶었다. 아직도 깊은 뜻은 잘 모르지만 연관되는 의미와 좋은 경구가 간혹 떠오르기도 하였다. 계속 듣다 보면 대학이 가진 의미가 내 속에서 살아 꿈틀대는 때가 오리라는 희망으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듣고 있다.
어느 날 점심 먹으러 나들이 가는 길이었다.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던 덕윤향원의 글자를 보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밝아지는 느낌이 왔다. 이 말은 대학에 있는 부윤옥 덕윤신富潤屋 德潤身의 구절을 인용한 글자였다. 거의 늘 귀로 들은 말인데 왜 그동안 한 번도 연관시키지 못했는지, 새삼 일천한 한문공부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이 향원의 주인은 자기가 노는 터전 내지 유택을 덕으로 가득 찬 무릉도원으로 만들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이 조그만 시골에서도 이런 문구를 쓸 수 있는 사람을 만나다니, 논어에 나오는 한 구절인 이문회우以文會友의 느낌이 절로 들었다. 예기치 않는 곳에서 뜻밖의 만남은 이처럼 기쁘다. 왜 일 년 동안 마주치면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새삼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의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인지 실감되었다.
세상은 조금만 열린 눈으로 보면 온통 낯선 곳이다. 늘 보는 익숙함을 벗어나면 만나는 사물과 자연은 저마다의 빛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 이 빛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바탕이 없다면 그냥 흘러가는 모습일 뿐이다. 각각의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빛과 보는 자의 바탕이 합일되는 순간, 개별적인 의미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형태로 창조될 수 있을 게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디면서 한 송이 국화처럼 새롭게 피어난 내면의 꽃은 나의 인생을 밝히는 소중한 빛이 되리라.
시간은 무심코 흘러간다. 점심때 가끔씩 호강하는 여유도 몇 년 뒤에는 기억의 저편에 추억으로 머물고 있을 터이다. 직장의 보호구역이 보장해주는 편안한 길에서 반쯤 빗겨나 보니 그 무엇이든 오면 오고, 가면 가는 한 때임을 받아들이는 여유도 조금 생긴다. 그동안 마주친 인연마다 의미를 갖고 찾아왔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마음의 골방에 그냥 쌓아놓고 있는 그 무엇도 꽤 많이 있을 게다.
그렇게 내 삶을 이루는 바탕의 재료들로 지금의 내가 있겠지만, 아직도 내 속 어딘가에서 잔뜩 먼지를 쓰고서 거듭나기를 기다리는 무엇이 있기에, 마음의 골방 문을 열어야겠다.
내가 아는 내가 아닌, 더 큰 나를 찾아가는 미지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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