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사방에 옅은 어둠이 깔렸다. 적벽강 해변의 언덕에 서 있다. 파도가 별빛을 받으며 밀려오고 있다. 이윽고 파도는 높이가 힘겨운 듯, 바닥에 부딪힌 후 하얀 거품을 내면서 힘찬 기세로 달려 나간다.

누구나 때가 되면 파도처럼 부서지고 사라져야 한다. 파도는 모래사장을 만나 포말을 만들며 일순간 흩어졌다. 그러나 또 다른 파도의 포말과 함께 영원히 오고 갈 테다.

 

순간의 고독 속에서 내 속에 일어나는 생각은 포말이 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포말로 거듭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참으로 무상하면서 영원하다. 점점 머리가 아닌 가슴의 빈틈으로 그 의미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누구나 인생의 산모퉁이를 돌아가야 할 때를 맞이한다. 그 길 앞에서 서성이며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생각, 미래에 올라올 생각들을 다듬어 보고 싶었다.

 

 

 

 

꽃이 피면 벌떼가 찾아들 듯, 세상은 참으로 우연과 필연이 겹쳐 일어나는 듯하다. 어쩌면 우연이라는 가면을 쓰고 필연이 말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그동안 틈틈이 쓴 글을 추슬러보니 38편의 글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 주역의 64괘 중에 규괘라는 이름의 괘가 있다. 38번째 괘다. 어긋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긋남. 내 속에 있는 순수한 나와 일상의 나는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 저마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시대의 흐름과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은 얼마만큼 어긋나게 가는지. 인연은 왜 갈수록 어긋나게 흘러가는 것인지. 아니, 세상살이는 원래 어긋남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이제 그 어긋남이 나의 가슴에 머물러 있어도 되는 나이가 되었는가 싶다.

 

막상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내 생각의 얇은 조각들을 책으로 세상에 드러낸다고 생각하니, 어긋남에 또 시비를 더하는 것은 아닐는지.

 

 

글을 쓰면서 어긋남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어긋남은 간극이었다. 세상에 휘둘린 나와 내 안의 내가 갈등하며 빚어내고 있는 틈이었다. 그곳에는 욕망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헛된 욕심을 줄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고민이 아직도 생생하게 숨을 쉬고 있는 동양의 사유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그 곳을 걷다보니 한발 두발 내 딛는 길에는 이미 옛 선인들의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길의 순례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처럼 자연스레 그릇에 담았다.

 

노자는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라는 말로 시작한다. 도는 인간이 만든 개념으로 도라고 이름을 붙이면 그 도는 원래의 진실한 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짧은 글귀 속에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수수께끼처럼 숨어 있었다. 내가 아는 내가 아닌, 즉 참된 나는 생각의 껍질인 말로서 온전히 나타낼 수 없다. 하지만 말에 의지해 가지 않고는 그곳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것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 헤매는 것이 인생의 의미인 듯싶다. 어쩌면 그 길을 걸어도 끝내 그 무엇을 찾지 못할 수 있지만, 그 길을 가고 싶기에 외로움까지 벗 삼아 걸어가고 싶다.

우물처럼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샘솟아 올라오는 생각의 깊이가 얼마인지 재어보고 싶었다. 막상 꺼내놓고 보니 그 생각의 깊이는 그리 깊지 못했다. 겨우 송사리가 헤엄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물물을 계속 길어올려야 맑은 물이 되듯이 생각도 계속 꺼내야 생각을 이루는 바탕이 맑아지게 된다.

 

그 생각의 샘에서 끄집어 올린 감정의 앙금들을 걸러서 수필이라는 형식으로 담았다. 혹여 말이나 글이 너무 많아, 말과 글로써 위로가 필요 없는 시대에 또 하나를 더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지나온 날들을 반추하고 인생항로에 하나의 선을 긋겠다는 욕심이 더 앞섰다.

 

이 조그마한 산문집이 나오게 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글의 향기를 함께 맡으며 격려해 준 도안문학회 문우님들과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가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18년 시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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